서울현충원에 남아 있는 동학농민혁명 발자취
[박용규 기자]
▲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동학을 이야기하다? 서울지역 동학사적 탐방 |
ⓒ 서울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
서울현충원에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신 다섯 분이 독립유공자 묘역에 모셔져 있다. 이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권병덕은 독립유공자 17에, 라용환은 독립유공자 22에, 라인협은 독립유공자 126에, 이종훈은 독립유공자 21에, 홍병기는 독립유공자 18에 모셔져 있다.
1894년 3월에 일어난 1차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동학농민혁명군의 자치행정기관인 집강소 설치와 신분제 철폐가 이루어졌다. 이어서 같은 해 9월에 일어난 2차 동학농민혁명은 침략자 일본군을 몰아내고자 봉기한 항일무장투쟁, 즉 독립운동이었다.
1894년 9월 10일 전라도 삼례에서 전봉준이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을 단행하자, 같은 해 9월 18일에 동학 최고지도자 최시형이 충북 옥천 청산 문바위에서 일본군을 몰아내라는 항일 총기포령을 내렸다. 최시형이 옆에 있던 많은 제자들(손병희·김연국·박인호 등)에게 총기포령을 내리면서 한 생생한 발언을 현장에서 지켜본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최시형 순국터 최시형은 1898년 음력 6월 2일 서울에 있던 고등재판소 감옥서 교형장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함. 서울지하철 종로3가역 9번 출구 근처에 있음. 2024. 05. 26.촬영 |
ⓒ 박용규 |
이후 전국의 동학교도들이 일제히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최시형으로부터 현장에서 접주 임명장을 받은 김구도 고향 황해도 해주로 돌아가 팔봉 접주가 되어, 1894년 11월 말 해주성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을 몰아내고자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끌고 선봉이 되어 해주성 서문을 공격하였다.
▲ 서대문형무소 수감시절의 권병덕 권병덕 모습 |
ⓒ 국사편찬위원회 |
▲ 왼쪽부터 권병덕의 묘(독립유공자 묘역 17번)와 라용환의 묘(독립유공자 묘역 22번). 국립서울현충원 소재. 2024. 06. 16.촬영 |
ⓒ 박용규 |
라용환(1864∼1936)은 평남 성천 출신으로, 1894년 접주로 평안도에서 31세에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1919년 56세의 나이로 삼일혁명 때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로부터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서대문형무소 수감시절의 라용환 라용환 모습 |
ⓒ 국사편찬위원회 |
라인협(1872∼1951)은 평남 성천 출신으로, 1894년 평안도에서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23세)에 참여하였다. 그 뒤에 1919년 삼일혁명(48세) 때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로부터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서대문형무소 수감시절의 라인협 라인협 모습 |
ⓒ 국사편찬위원회 |
▲ 라인협의 묘(독립유공자 묘역 126번). 국립서울현충원 소재. 2024. 06. 16.촬영 |
ⓒ 박용규 |
이종훈(1858∼1931)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37세)에 참가하였다. 그는 손병희 휘하에서 동학두령으로 경기 광주에서 기포하여 중군을 담당하여 공주 전투, 무주 전투, 용산 전투, 북실 전투, 외서촌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 뒤 1919년 삼일혁명(65세) 때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로부터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이종훈의 묘(독립유공자 묘역 21번). 국립서울현충원 소재. 2024. 06. 16.촬영 |
ⓒ 박용규 |
홍병기(1869∼1949)는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여주에서 접주로 2차 동학농민혁명(26세)에 참여하였다. 그 뒤 1919년 삼일혁명(51세) 때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로부터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와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서대문형무소 수감시절의 홍병기 홍병기 모습 |
ⓒ 국사편찬위원회 |
▲ 홍병기의 묘(독립유공자 묘역 18번). 국립서울현충원 소재. 2024. 06. 16.촬영 |
ⓒ 박용규 |
이로써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에서 지도자로 참여한 권병덕·라용환·라인협·이종훈·홍병기 등 5명이 1919년 또 다른 항일 독립운동인 삼일혁명에 민족대표 33인으로 다시 가담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외에 손병희·박준승·임예환·홍기조 등 4인도 모두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과 삼일혁명 때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다.
▲ 전봉준 장군 동상 서울지하철 종각역 5번과 6번 출구 사이 의금부 전옥서 터에 전봉준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24. 05. 26.촬영 |
ⓒ 박용규 |
한국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2004년에 제정된 '동학농민명예회복법'에 "1894년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 참여자"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규정하고 있다. 독립보훈을 맡고 있는 국가보훈부는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전봉준·최시형부터 독립유공자 서훈 조치를 즉각 단행하기를 바란다.
서울에 동학농민혁명 사적지가 많다.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이 있는 분은 서울지하철 종각역(1호선) 5번과 6번 출구 사이에 있는 '전봉준 동상'을 먼저 보고, 종로3가역(1호선) 9번 출구에 있는 '최시형 순교터'를 탐방한 뒤에, 동작역(4호선) 4번 출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의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였던 '권병덕·라용환·라인협·이종훈·홍병기의 묘'를 답사하여 보기를 바란다. 반나절이면 3곳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람 죽어나가는데... 환경부의 이상한 보도자료
- 재벌 2세의 금수저 고백?... 최태원 회장의 딜레마
- 오열한 시민들, 껴안은 사망 훈련병 어머니... "제 아이 돌려달라"
- '설거지나 할 손이 아닌데' 뚝배기 닦다 북받친 설움
- 한국 언론의 타락 보여주는 세 가지 사건
- 윤 대통령, 이종섭과 통화한 날 임기훈·신범철에게도 전화
- '김건희 무혐의' 이후 쏟아진 청탁금지법 문의...권익위 답변은 언제?
- 이용민 중령 "채 상병 순직, 성과 내야한다는 사단장 집착 탓"
- "최저임금 차별 적용? 똥기저귀 들고 쫓아가야죠"
- 북러, 포괄적 동반자 협정 체결 "침략 당하면 상호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