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음악이다"…'美건축가 톱3%' 영예 안은 홍태선의 말

1981년 미국 미시간주의 명문 기숙학교 크랜브룩에 15세 한국인 소년이 입학했다. 아시아인이 압도적 소수인 시절, 영어도 서툰 그는 따돌림의 대상이 됐다. 약 43년이 지난 이달, 그는 미국 건축사협회의 명예회원(FAIA)으로 선정됐다. 미국 건축가 중에서 3%만 선정되는 영예다. 건축가 홍태선(60)의 이야기다. 그를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그의 YKH 건축사무소에서 만났다.
그의 건축사무소엔 걸린 크랜브룩 졸업장엔 "최우등 졸업" 글자가 선명하다. 그는 "당시엔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지만 굴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대신 공부에 매진하고 음악에서 위안을 찾았다"며 "자정쯤 음악실로 가서 피아노를 치면 행복했기에 하루에 3시간만 자도 견딜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힘든 순간이라도 잘 극복해내면 자신의 지평선을 넓히는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10대엔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부모님 권유로 의대를 졸업했고, 공간이 주는 힘에 매료되면서 건축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의 한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본격 건축의 길을 걷는다. 예일대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탈리아 피렌체 시러큐스 대학에서도 건축을 공부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인 야마사키 미노루(山崎實)의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경력을 쌓는다. 야마사키는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설계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야마사키 선생님이 (미) 건축사협회 명예회원이셨는데, 항상 동경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며 "이번에 선정되면서 꿈 하나를 이뤘다"로 말했다.
그의 이력서엔 한국뿐 아니라 미국ㆍ중국ㆍ동남아 등지의 "설계 경기 1등" 수십 건이 빼곡하다. 서울에 야마사키 한국 지사를 YKH라는 이름으로 설립하고 한국 및 아시아 각지의 풍경을 바꿔내고 있다. 경기도 지역의 아울렛이며, 서울 광화문의 한 상업 건물 등, 우리네 일상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건물이 그의 작품이다.

홍태선의 건축은 음악적이다. 그는 "건축과 음악은 닮았다"며 "작곡가가 오선지로 창작을 하듯 건축가는 도면으로 건물을 그린다"고 말했다. 이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작곡한 곡에서 음표를 반복해 쌓아 고귀한 선율이 나오고, 때론 쉼표로 숨 고르기를 해줘야 온전한 음악이 되듯, 건축 역시 반복과 쉼표, 리듬의 협업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펴낸 영문 단행본 『태선 홍(Taesun Hong, YKH Associates)』의 각 장(章)을 그가 음악 용어로 나눈 까닭이다. 이 책은 건축 서적계의 유명 출판사인 이미지 퍼블리싱 컴퍼니가 출판하는 '마스터 건축가 시리즈'의 일부로 선정됐다.
그가 설계한 국내 골프장은 나무로 음표를 그린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건축 대상 우수상에 이어 미국 건축가협회 샌프란시스코 지역 대상을 받은 경기도 파주 브루어리 역시 같은 패턴을 반복하되 변화를 줬다. 콘크리트 거푸집을 그 지역의 낙엽송 통나무로 만들고 코발트 빛 푸른색 안료를 넣어 색감과 질감 모두를 살렸다. 그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음표를 반복하되 당시엔 비교적 새로운 악기였던 피아노로 감탄을 끌어냈듯, 건축 역시 패턴을 반복하되 새 질감이나 재료를 쓰는 데 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꿈을 물으니 "음악당을 짓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에게 건축과 음악은 불가분이다. 그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음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온전한 공간을 짓는 게 꿈"이라고 부연했다.
한국의 건축은 그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그는 "한국인의 잠재력과 재능은 뛰어난데 우리가 스스로 규제나 심의 등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며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같은 인물이 건축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나올 수 있도록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며 실패도 맛보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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