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택과 집중’했지만 아직 복지 중심인 저출생 대책

2024. 6. 2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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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식 나열 탈피, 일·가정 양립 집중 긍정적


수도권 집중·경쟁 완화 등은 장기 대책으로 미뤄


정부가 어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새로운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다. 저출생대응기획부와 저출생수석실 신설을 예고한 뒤 기존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처음 내놓은 대책이다. 새 대책의 특징은 각 정부부처의 사업 계획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온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등 3개 분야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또 저출생과 직접 관련된 예산의 87%가 양육에 집중된 것을 점차 일·가정 양립 쪽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수요 조사를 통해 정책 과제를 발굴한 점은 긍정적이다. 소득 제한 없는 지원, 출산·육아휴가 미결재 시 자동 승인 간주, 단기 육아휴직, 돌봄휴가 시간 단위 사용, 공공임대주택 거중 중 출산하면 넓은 평수 이사 보장 등의 정책이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주형환 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저고위의 다짐처럼 이번 대책이 초저출생 추세의 반전 계기가 되기엔 부족한 점도 많은 게 사실이다. 우선 출산의 가장 큰 장벽인 일·가정 양립이 현장의 분위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휴가 기간을 늘리고 휴가 기간 소득을 보전해 주는 것은 출산 결심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실제 일터에선 출산과 육아휴가로 인한 공백을 인력 보충 없이 동료들이 나눠 부담하는 게 현실이다.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 휴가 사각지대도 넓다. 선진국 최고 수준인 근로시간은 잘 줄지 않고, 가정에선 여전히 남성의 육아와 가사노동 분담이 세계 꼴찌다. 이런 현실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경쟁을 완화하고,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소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여러 분야에서 수도권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지만 수도권 도시들의 출산율이 전국 최저 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통계를 통해 입증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런 구조적 대책은 모두 장기 과제로 돌렸다. 그래서 “여전히 출산과 복지 중심의 인구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가 나온다.

19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곽여성병원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129병상 규모의 이 병원은 지난 2018년 전국 분만 건수 1위에 올랐지만 저출생 등 영향으로 지난달 폐업을 결정했다. 뉴스1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출산 장려와 가족 친화적 정책에서 모범국인 핀란드도 합계출산율이 매년 최저치를 경신해 심각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우리만큼 최악은 아니지만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비슷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인구 감소 방어 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일방적인 출산 독려만으론 한계에 달했다는 점도 인정하고 시각을 좀 더 넓혀가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특정한 인구 수준을 절대적인 목표로 놓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인구 상황에서 어떤 사회 시스템을 만들지에 대한 정책도 함께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새겨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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