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언론이 애완견이 아닌 이유

김현기 2024. 6. 2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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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논설위원

#1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기자 보고 애완견이라 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대다수 기자는 애완견처럼 상냥하지 못하다. 먹을 걸 줄 때 기뻐서 꼬리를 흔들지도 않고, 주인(윗사람)이 와도 달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좀 까칠하다.
둘째, 애완견처럼 절대적 순종을 하지 않는다. 주인이 뭘 주면 다 받아먹지 않고, 일단 의심한다. 대들 때는 대든다. 주인을 지키기 위해 짖는 게 아니라 불의에 화가 나 짖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판에 출석하며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셋째, 애완견처럼 큰 사랑과 보호 속에 자라지 않는다. 사랑 대신 데스크와 선배들의 꾸지람을 들으며 성장한다. 보호 대신 늘 치열한 현장 속에서 평가받는다. 팩트 하나 틀렸다간 그 여파가 몇 년은 간다.
넷째, 애완견과 달리 사람들은 기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직업적 특성으로 귀찮고, 까다롭고, 질문이 많다. 뭐 그런 식이다. 하루 두세 끼 꼬박 챙겨먹는 것 빼고 애완견과 기자 사이에 그다지 공통점이 없다. 결론적으로 이 대표가 '언론=애완견'이라 말한 건 틀렸다. 대다수 기자는 애완견이 될 수 없다. 이 대표 표현을 빌리자면 "왜곡이자 조작"이다.

「 언론은 순종 않고 보호받지도 않아
이 대표의 삐뚤어진 언론관이 문제
손타령 달타령 말고 깔끔 사과하길

#2 그렇다면 이 대표는 왜 언론을 굳이 애완견에 비유했을까. 나는 이 대표의 언론관이 애초부터 삐뚤어져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게 2018년 6월 경기지사 선거일의 발언이다. 당선이 확실해진 이 대표는 각 방송사의 인터뷰에 응했다. 여배우와의 스캔들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이 지사는 외쳤다. "대변인! 이거 하고 더 이상 하지 마. 엉뚱한 질문을 자꾸 해서 안 돼. 약속을 어기기 때문에 다 인터뷰 취소야." 급기야 MBC와의 인터뷰 때 이 대표는 돌연 이어폰을 빼 던져버렸다. 당시 그 영상을 보며 1년 반 전인 2017년 1월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첫 기자회견장을 떠올렸다.
트럼프는 CNN을 지목해 "수치스럽다" "실패한 쓰레기더미" 등의 악담을 퍼부었다. 질문하려는 CNN 기자를 향해선 "당신네 회사는 끔찍하다. 조용히 있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납세 자료 공개를 요구한 NBC 기자에겐 "기자들만 유일하게 나의 납세 자료에 관심이 있다"고 조롱했다.
기자회견 후 블룸버그통신이 지적한 "트럼프의 첫 기자회견은 그의 정치 이력을 잘 말해주는 혼돈과 허세의 장이었다"는 기사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난 이 대표나 트럼프나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한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다 'X소리'로 취급한다. 검언유착 프레임 짜기가 주특기다. 야당인데도 이런데 집권 여당이 되면 어떨까.

지난 2017년 1월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첫 기자회견에서 미국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3 이 대표는 발언 나흘 만에 "언론 전체 비판으로 오해하게 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물러섰다. 그러곤 또다시 자신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늘 이런 식이다.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다. 왜 사과에 '했다면' '였다면'이란 가정이 필요한가. "언론 전체 비판으로 오해하게 해 유감이다"고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러니 치고 빠지기란 비판을 받는다.
이 대표는 또 워치독(감시견), 랩독(애완견), 가드독(경비견)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맞다. 그런 용어를 모르는 언론인은 없다. 오히려 잘 모르는 이들이 자주 그런 표현을 쓴다. 문제는 그런 용어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제1당 대표가 언론 전체를 향해 비하와 폄훼의 뜻을 담아 그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 대표가 이날 애완견 대신 인용한 '앵무새'라는 용어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 대표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발언의 본질을 이해해 달라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 대표의 측근 정청래 수석최고위원이 4년 전 야당(현 여당)을 향해 했던 말을 이 대표에게 그대로 돌려드린다.
"손가락이 예뻐야 달을 쳐다보든지, 말든지 하지 손가락에 심술이 더덕더덕 붙었는데 어찌 달을 보냐. 나쁜 손 때문에 오히려 달을 볼 수 없다. 손 타령 달 타령 하지 말고 깨끗하게 사과하시라."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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