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함께 꿈꾸는 지도자가 그립다

2024. 6. 2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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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앞 안 보이는 불확실성 시대
미래에 대한 비전이 가장 절실

과거 얽매인 공방과 박정희
노무현에 대한 향수 자극하는
회고적 지도자들만 넘친다

꿈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
도전적·구체적인 비전으로
동기 부여하는 리더 필요하다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한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가 있었다. 2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차지했다. 지난 수년간의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노무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인기 순위 1위에 번갈아 오르는 모양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돌이켜보면 업적만큼이나 잘못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때로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난관을 돌파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제의 수탈과 6·25전쟁의 폐허로 가난에 신음하던 국민에게 잘사는 나라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을 통해 가난을 몰아내고 선진국으로 가는 기틀을 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압축성장 과정에서 결과가 과정을 포장하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문화 때문에 소외되고 상처받은 국민에게 공정하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 대한 꿈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고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를 뿌리 뽑고 권위주의적 문화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두 전직 대통령이 뿌린 씨앗은 열매를 맺고 있다. 202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을 추월해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중 6위를 차지했다.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가운데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5개국뿐이다. 또한 유엔 등 대부분 국제기구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국제 질서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G7(주요 7개국)에 호주와 함께 한국을 가입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될 만큼 국제적 영향력도 커졌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은 꿈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기술의 진보가 견인하는 급속한 환경 변화와 자국 이기주의로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지금, 미래에 대한 비전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고 국가 역량을 한데 모으고자 하는 정치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법적 공방과 정치적 논쟁만을 일삼는 정치 지도자 아니면 그저 두 전직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대책 없는 위로로 공허한 희망을 심어주는 정치 지도자들만 난무할 뿐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의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체험한 실존을 토대로 ‘의미 치료’라는 정신의학적 치료 기법을 체계화한 빅터 프랭클 박사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 동안 수용소의 사망률이 급증한다. 이 기간에 사망률이 급증한 원인은 더욱 가혹해진 노동 조건이나 악화한 식량 사정, 또는 전염병 때문이 아니었다. 대부분 수감자가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버텼지만,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지 않자 절망감에 못 이겨 삶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미래에 대한 꿈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자각할 때, 마주하는 시련과 절망도 극복할 수 있다. 시련과 마주한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의미 치료는 시련과 마주한 이가 존재의 의미를 자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늘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의미 치료가 필요하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얘기하며 삶에 희망을 심어주는 정치 지도자, 달콤하지만 공허한 비전이 아닌 도전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을 통해 삶에 동기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입법과 기존 법안 폐지도 지지세력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표를 얻기 위해 추진되어서는 곤란하다. 그 근거 또한 늘 듣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과의 단순 비교가 아닌 국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비전과의 연계성이 되어야 한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장롱 속 금붙이까지 모았던 우리다. 제대로 된 비전만 제시되면 일정 부분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기꺼이 비전을 구현하는 데 동참할 것이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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