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법과 삶] 삶과 죽음의 질 높이는 재택의료
우리는 일상 그대로 살다가 가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한국은 2023년 65세 이상 인구가 약 19%로, 사실상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연간 사망자가 35만명을 넘어섰고, 더 늘어날 게 확실하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대부분 건강하게 살다가 자신이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임종 장소의 16% 만이 집이고, 77%는 의료기관 같은 시설이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는 재택임종이 50% 전후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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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재택 임종은 16% 불과
미·영·독 등의 50% 전후와 대조
‘집에서 마지막을’ 소망과 상충
방문의료 전달체계 확보 필요
」
우리의 국민건강보험법과 장기요양보험법은 전 세계의 주목 대상이지만, 점점 더 의료기관 중심의 진료체계가 굳어지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노인성 질환, 암 등의 급성기 환자는 단기간 입원치료 후 집에서 통원 치료나 방문 진료를 받는 재택의료 중심으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노화나 암이 진행되면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적 상실감과 소외감이 높아져 생소한 의료기관보다는 살던 집에서 안정을 취하며 치료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퇴원의 희망을 잃은 채 장기입원할 경우, 사회와 격리된 채 옆 병상의 환자들 사망을 보면서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우리 건강보험과 장기요양은 의사의 방문 진료 제도가 없고, 가족간병비가 지급되지 않아 재택의료나 재택간병을 할 수 없어 장기입원치료로 내몰리고 있다. 이를 바꾸어야 한다. 급성기만 의료기관에서 치료받고, 환자가 원할 경우 집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재택의료 제도가 원칙이 되어야 한다. 아(亞)급성기나 만성기 환자는 귀가시킨 뒤 의료인이 환자를 찾아가는 환자 중심의 의료전달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공약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생애 모든 주기별 보건복지권 보장’이다. 정부는 그 공약 실행의 일환으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비대면 진료,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 대한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올 1월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을 출범하였다. 이 사업은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요양 기관·시설에 입원한 장기 요양 보험환자가 지역사회(집)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구성해 방문 의료와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국회는 올 3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장애인 등이 집에서 의료·요양 같은 돌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의료인이 환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족에게 간병비를 지급해 집에서 치료와 간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국민에게 인간다운 존엄과 가치, 행복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방문의료 서비스를 정착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인력 확보다. 향후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공공의료기관의 방문 진료 전담 의사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방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도 많이 생겨야 한다. 의사 수가 부족한 지금으로서는 차선책으로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다. 또 가정간호센터를 설치해 간호사와 물리치료사가 환자 가정을 찾아 의사 처방에 따라 재택의료하고, 환자 상태를 의사에게 보고함으로써 입원 치료와 유사한 진료서비스를 받게 하면 된다. 정부는 집이 없는 환자들에게 공공복지임대주택을 분양하여 자율적으로 생활하게 하면서 방문진료, 간호, 재활, 간병 등 지역통합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임종도 살던 곳에서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정부나 의료 공급자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상 집단으로 입원 치료나 간병을 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입원 환자는 고액의 입원료와 식비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또 과잉 진료로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가 매년 상승하는 악순환도 지속되고 있다. 재택의료 및 간병은 이런 경제적 부담을 줄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까지 얻을 수 있다.
재택의료를 위한 정책 전환은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의 지속적 발전뿐만 아니라 환자 인권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최근 의료 IT(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인공지능(AI)의 비약적 발전 등으로 재택의료는 정부의 인식 전환과 정책 집행 의지만 있다면 이른 시일 내에 시작할 수 있다. 어디서 치료받고 어디서 삶을 마감할 것인가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기 위한 시민들의 적극적 의사 표현이 필요하다. 그 강도에 따라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 찾아가는 의료 서비스, 재택의료, 재택 임종이 그만큼 빨리 정착될 수 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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