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조선시대 이민, 네덜란드 하멜 일행
1653년(효종 4년) 8월 16일 제주도 대정리 산방사 앞바다에 표류하던 네덜란드 상선이 도착했다. 헨드릭 하멜(1630~1692)을 비롯한 64명이 그 배에 타고 있었다. 상륙하면서 28명이 죽고 36명이 구조됐다. 조선 땅에서 14년간 노예처럼 생활하다가 8명이 1차로 탈출해 일본을 거쳐 귀국했다. 남원과 순천에 잔류했던 8명은 네덜란드가 일본 막부 정권을 통해 조선 조정에 호소해 2차로 귀국했다.
생존자 36명 가운데 16명이 귀국하고 일부는 병으로 죽었지만, 얀 클라츠 등은 귀국을 거부하고 한국인과 결혼해 처자식을 두고 조선에서 일생을 마쳤다. 물론 처자식을 두고 매정하게 귀국한 사람도 있다. 남은 사람들은 천민과 결혼했으므로 그 뒤의 혈족이 어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네덜란드 표류자들과 조선인의 자녀는 한국인과 서양인 사이에 태어난 최초의 혼혈이다. 이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 섞여 살고 있다.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을 비롯해 혼혈은 한국사에 허다하다.
이민을 주제로 한 글에서 하멜 표류기를 거론하는 이유는 민족은 오직 핏줄뿐인가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고전파 민족주의자들은 핏줄을 민족의 첫째 구성 요소로 거론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인 2세로서 한국어 실력이 8학년의 수준에 이르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사는 이들을 동포 또는 민족이라 한다.
이에 따른 구별로 보면 언어를 잊은 다른 국적의 형제는 그저 혈연일 뿐 민족이 아니며, 차라리 우리와 고락을 함께하며 같은 문화와 언어를 쓰는 사람이 동포가 아닐까.
절망적인 ‘인구 절벽’ 앞에서 근거도 없는 순혈주의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단군은 역사로서 국조(國祖)일 뿐이지 학술적으로 보면 한국은 26개 민족이 이룬 사실상 다민족 사회다. 이민을 받을 것인지, 국가 쇠락의 길로 갈 것인지 결심할 순간에 왔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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