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극단적 헌법주의자들
더불어민주당 ‘정치검찰 사건조작 대책단’이 검사 4명의 탄핵소추 추진·검토에 나섰다. 이 중 3명이 이재명 대표 수사 검사다. 탄핵 추진이 확정된 엄희준 부천지청장과 강백신 성남지청 차장검사는 대장동·백현동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탄핵 검토 대상인 박상용 수원지검 부부장 검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관련 이 대표 소환조사에 참여했다.
탄핵은 22대 국회 시작 전부터 예고됐다. 민주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법이 규정한 국회의 탄핵 권한을 적극 활용해 개혁 국회를 강화하기로 했다”(윤종군 원내대변인)고 결론 내리면서다. 하지만 첫 대상이 이 대표 수사 검사가 될 줄은 몰랐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 전환’이 목표라면 국무위원에 대한 조치부터 검토하는 게 논리적이지 않는가.
물론 탄핵은 헌법 65조가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다. 공무원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 때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과반 의석 야당이 탄핵안을 남발한 건 아니다. 16대 국회에선 2001년 DJP 연합 붕괴 이후 3년간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1명을 탄핵소추(기각) 하는 데 그쳤다. 3당 체제였던 20대 국회에선 두 야당이 손을 잡으면 과반을 훌쩍 넘겼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만 이뤄졌다. 물리적으로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권한 행사는 서로 자제하는 게 정치권 미덕이었다.
자제의 반대는 권한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헌법적 강경 태도(constitutional hardball)’라 부른다. 헌법 규정을 활용하지만, 민주주의 질서가 아닌 상대방 공격이 목표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미국과 남미의 여러 사례를 들어 “헌법이 합법적인 형태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여권도 마찬가지다. 연속적인 탄핵안 발의를 대여투쟁 전술로 처음 활용한 게 태극기 부대와 결합했던 2019~2020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국회를 설득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대신, 대통령령(헌법 75조)으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행정안전부 경찰국을 출범시켰다. 대통령 거부권(헌법 53조 2항)은 이미 14차례 행사했다. 1988년 이후 34년간 전임 대통령 7명이 거부권을 행사한 총 횟수와 같다. 그런데도 여당은 국회 안에서 싸우지 않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만 건의한다. 여야 모두 ‘극단적 헌법주의자’가 이끄는 게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오현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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