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러 가장 강력한 조약"…푸틴과 이례적 생중계 발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열린 북ㆍ러 정상회담 후 이례적으로 생중계 기자회견에 직접 나섰다. “북ㆍ러 관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조약이 탄생했다”고 자평하면서도, 준비된 원고를 읽는 그의 표정은 긴장감 탓인지 굳어 있었다.
이번 푸틴 방북의 하이라이트는 이날 오후 6시 15분쯤 이뤄진 공동언론발표였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이 다른 정상과 나란히 서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날 회견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먼저 발언하고 김정은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정은은 9분 동안 시선을 연신 원고가 있는 아래로 깔거나 입술을 적시며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다. 이날 확대회담에서도 김정은은 공개된 사진·영상에선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이었다.
회담과 공동언론발표 이후 이어진 정상 간 단독 산책에선 분위기가 보다 풀린 모습이었다.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 발표 등 무거운 짐을 덜어낸 듯 김정은은 푸틴과 나란히 걸으며 양측 통역만 둔 채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다만 크렘린궁은 이날 양 정상의 대화 내용 등 음성은 제거한 채 산책 영상을 배포했다.
회담 이후 양 정상은 선물도 교환했는데 푸틴은 김정은에게 최고급 전용차인 ‘아우루스’, 차 세트, 단검을 선물했다고 타스통신은 보도했다. 푸틴은 지난 2월에도 아우루스를 선물했다. 아우루스와 같은 운송 수단이자 사치품을 북한에 반입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에 해당한다.
이날 러시아 매체 스푸트니크가 공개한 사진에는 김정은과 푸틴이 아우루스의 운전선과 조수석에 나란히 탑승한 모습도 담겼다. 김정은은 푸틴에게 푸틴을 묘사한 예술품을 선물했다고 한다.
한편 이날 정오쯤 푸틴이 24년만에 발을 내딛은 평양 김일성 광장은 러시아 국기, 형형색색의 꽃, 풍선을 든 주민들로 가득 찼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수많은 어린이들까지 동원돼 두 독재자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고 열렬히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김정은은 이후 확대회담에서 ”오늘 보신 이 열렬한 환영 인파는 조러(북·러) 현 주소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김일성 광장에서 김정은과 푸틴은 나란히 의장대를 사열했다. 이어 레드카펫을 걸어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 고위 간부와 악수하며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두 정상은 또 벤츠 차량에 나란히 올라 김일성 광장을 돌며 카퍼레이드도 했다. 두 정상이 통역을 사이에 두고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날 광장 주변 건물은 북·러 국기로 장식됐고 '조로친선'이라는 문구가 달린 애드벌룬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광장 중앙에는 푸틴과 김정은의 초상화도 걸려 있었다. 이날 러시아 매체는 "평양에 푸틴의 초상화 수백개가 걸렸다"는 북한 주민의 전언도 보도했다.
이날 오전 2시 45분 평양 순안공항에 푸틴이 도착했을 때 별다른 환영식 없이 김정은 혼자 푸틴을 맞아 바로 아우루스에 올랐던 것과는 대비된다. 푸틴이 24년만의 방북에 지각하자 당초 예상됐던 환영 행사가 공항에선 생략됐던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공항과 김일성광장 환영식 모두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나 딸 김주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어 금수산영빈관에서 열린 확대 정상회담에는 북한 측 인사 6명이 자리했고 러시아 측에선 그 두배 이상인 13명이 참석했다. 북한 측에서는 김덕훈 내각 총리, 최선희 외무상,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용원 당 조직비서, 김성남 당 국제부장, 임천일 러시아 담당 외무성 부상 등이 회담에 참석했다.
한편 러시아 측에선 데니스 만투로프 제1부총리, 알렉산드르 노바크 에너지 부문 부총리,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보좌관,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대사관 대사, 알렉세이 크리보루치코 국방차관 등이 참석했다.
북한 측 참석자가 외교·국방 분야에 한정된 것과 달리 러시아는 에너지 분야 인사까지 배석시킨 점이 주목된다. 김정은은 확대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푸틴이 "다음 북러회담이 모스크바에서 열리길 바란다"고 말하자 통역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김정은과 푸틴은 확대정상회담이 끝난 뒤 커다란 원탁에 찻잔을 놓고 통역만 배석시킨 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양 정상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소련군을 추모하는 해방탑에도 헌화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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