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 최종 각하·기각…소송전 사실상 마무리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등이 '의대정원 2000명 증원·배정 처분'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이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면서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산발적으로 제기된 소송전은 사실상 의료계의 '완패'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전공의 등 신청인들이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된 보건복지부 장관의 '증원발표' 처분과 교육부 장관의 '증원배정'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내며 함께 신청한 것이지만, 심리 과정에서 취소소송의 원고적격에 해당하는 신청인 적격과 본안사건에서 취소 사유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집행정지 사유, 즉 의대생의 교육권 침해와 '의대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 사이의 비교형량까지 이뤄진 만큼 본안소송에서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19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4명, 연세대학교 대학병원 전공의 3명,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재학생 5명, 의과대학 준비생 6명 등 총 18명이 복지부 장관의 '2025학년도 의대정원 증원발표' 처분과 교육부 장관의 '2025학년도 의대정원 증원배정' 처분의 집행을 정지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 대한 재항고를 기각, 나머지 청구인들의 신청을 각하하고 의대 재학생들의 신청을 기각한 서울고등법원의 원심결정을 확정했다.
앞서 이번 신청 사건의 항고 사건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은 의대 입학정원을 정하기 위한 교육부 장관의 처분은 각 대학 총장을 상대방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의대 교수나 전공의는 아예 처분을 다툴 자격조차 없는 ‘제3자’라고 판단했다. 또 학습권을 침해받을 수 있는 의대생들은 집행정지를 신청할 자격은 인정되지만 '의대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를 위해 그들의 권리를 일부 희생해서라도 공공의 이익을 옹호할 필요가 있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결정의 결론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다만 대법원은 복지부 장관의 의대정원 증원발표에 대해 처분성을 인정한 원심결정에는 문제가 있다고 봤지만 신청을 배척한 결론은 정당하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원심결정을 파기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증원발표는 피신청인 교육부 장관이 의과대학의 모집정원을 정하면서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인 피신청인 복지부 장관과 거쳐야 하는 협의의 내용을 피신청인 복지부 장관이 발표한 것에 불과하고, 피신청인 교육부 장관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거친 협의의 내용에 구속된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으므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처분성을 부정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실제 의대정원 증원이라는 법적 효과는 이 사건 증원배정을 통해 비로소 외부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증원발표를 이 사건 증원배정과 별도로 항고소송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증원발표의 효력 정지를 구하는 신청은 부적법해 각하돼야 하므로, 원심이 이 사건 증원발표의 효력 정지를 구하는 일부 신청인들의 신청을 기각한 것은 잘못이나, 신청을 배척한 결론은 정당하므로 이를 이유로 원심결정을 파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대법원은 교육부 장관의 의대정원 증원배정 처분에 대해서는 처분성을 인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앞서 서울고등법원과 마찬가지로 의대 재학생을 제외한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 준비생들에 대해서는 신청인 자격을 부정했다.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신청인들에 대해서는 이 사건 증원배정 처분의 집행정지를 구할 법률상 이익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의대정원 증원배정 처분과 관련된 의대 재학생의 신청인 적격을 인정하는 근거로 '대학설립·운영 규정'과 헌법 제31조 1항의 교육받을 권리를 들었다.
재판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에 의하면 각 대학은 의료인력의 양성과 관련되는 모집단위별 정원에 관하여는 피신청인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사항에 따라야 하는데, 이에 따라 피신청인 교육부 장관이 의과대학의 학생정원을 정할 때도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따른 교사, 교지, 교원 및 수익용 기본재산에 따라 정해지는 학생 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대학설립·운영 규정'에 의하면 학생의 수에 따라서 의과대학이 갖춰야 할 교육기본시설과 지원시설 및 연구시설의 면적과 의과대학이 확보해야 하는 교원의 수가 정해지고, 의과대학이 학생정원을 증원할 때도 그 증원분을 포함한 전체에 대해 위와 같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며 "이는 교육기본법 제2조에 정한 교육의 이념을 실현하고, 나아가 의대 재학생들에 대해 헌법 제31조 1항이 정한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라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의 이 사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야 할지 집행정지의 실체적 요건을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증원배정이 당장 정지되지 않더라도 2025년에 증원되는 정원은 한 학년에 불과하므로, 의대 재학생인 신청인들이 받게 되는 교육의 질이 크게 저하될 것이라고 보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의과대학의 교육특성상 의료인 양성에 필요한 교육은 입학 후 1~2년의 기간이 경과해야 시행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2025학년도에 증원된 수의 신입생이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의료인 양성에 필요한 교육이 불가능해진다거나 그 질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장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 증원배정의 집행이 정지될 경우 국민의 보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의대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이 사건 증원배정의 집행이 정지될 경우, 이미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이 증원되는 것을 전제로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과 교육현장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이 명시적인 판단을 내놓으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증원을 두고 벌인 소송전도 사실상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고법에는 각 대학 총장을 상대로 의료계가 낸 집행정지 신청이 10건 넘게 계류 중인데, 대법원 판단을 따라 차례로 기각·각하될 전망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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