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의 바닥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다"...여든여섯 '괴짜 노시인' 황동규

이영희 2024. 6. 19. 17: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0년 가을, 당시 여든둘 황동규 시인은 시집 『오늘 하루만이라도』를 펴내며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고 적었다. “내 삶의 마지막을 미리 알 수 없듯이 내 시의 운명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자”면서다. 그리고 예언처럼 시는 별난 운명을 살아내 다시 한 권의 시집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말 출간된 시인의 열 여덟 번째 시집 『봄비를 맞다』(문학과지성사)다.

여든 여섯의 나이에 새 시집 『봄비를 맞다』를 펴낸 황동규 시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운명을 뒤흔든 것은 코로나19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늙음이 코로나 글러브를 끼고 삶을 링 위에 눕혀버리는” 사태가 벌어졌고,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시인은 “사는 게 견디기 힘들 만큼 헐렁해진” 날들에 시를 무기로 싸웠다. 그리하여 탄생한 59편의 시에선 색다른 투지가 팔딱거린다. 지난 18일 오후 그가 자주 찾는다는 서울 사당역의 한 카페 앞, 납작한 모자를 쓴 노시인이 손을 번쩍 들며 다가왔다.

Q : 이번 시집을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한 인간의 기록’이라 하셨습니다.
A : 젊은 사람들은 조금 다르겠지만 80세가 넘은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그야말로 리얼한 공포였으니까요. 주변의 누군가가 갑자기 죽음을 맞고, 후유증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위기가 닥치니 오히려 치열해지더라고요. 늘 존재하던 삶의 풍경들이 그만큼 선명해지는 것이죠.

Q : 그래서일까요. 밑줄 긋고 싶은 구절들이 많았습니다.
A : 몇몇 평론가들이 저한테 ‘괴짜 노시인’이라고 하더군요. 여든이 넘어 계속 시를 쓰는 것도 신기한데, 밀고 나가는 힘이 더 강해진다고요. 듣는 사람 기분 좋으라는 거짓말이 섞여 있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봐요(웃음). 제 실력이라기보다는 늙음과 코로나라는 역경이 그렇게 만들었겠죠.
이런 구절들이다. 시인은 ‘코로나 집콕’ 중 후배가 보내준 꽃이 내뿜는 향기에 “단 한 번 주어지는 한창 삶”의 강렬함을 느끼고(히아신스), 죽었다고 생각했던 고목나무가 연두색 잎을 내미는 것을 보며 “그래 맞다. 이 세상에/ 다 써버린 목숨 같은 건 없다”(봄비를 맞다)고 외친다. ‘그날 저녁’이라는 시에서는 삶의 마지막 날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기도 한다. “세상 뜰 때/ 아내에게 오래 같이 살아줘 고맙다 하고/ 가구들과 눈으로 작별, 외톨이가 되어/ 삶의 마지막 토막을 보낸 사당3동 골목들을/ 한 번 더 둘러보고 가리.”

황동규 시인의 18번째 시집 '봄비를 맞다' 표지. 사진 문학과지성사

Q :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어둡지 않습니다.
A :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삶을 제대로 살 수 없어요. 그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지금을 반기며 사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40대 후반에 ‘풍장’이라는 시를 쓰면서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이제는 두려운 것이 없어요. 시집 맨 끝에 실린 시에서 ‘살아있는 게 유혹일 때 갑니다’라고 썼는데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끝까지 철저히 즐기다 가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집니다.

Q : 늙음도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인가요.
A : 어떤 인생에도 고통과 시련은 있지요.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한 인간의 삶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늙으면 온갖 불편함이 찾아옵니다. 눈이 안 좋아 책을 읽기 어렵지만 코로나 와중에 톨스토이를 다시 읽었고, 척추협착증때문에 빨리 걷기 힘들지만 지금도 지하철 타고 약속 장소를 찾아다닙니다. 이 나이에 시집을 내고, 이렇게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지요.

여든 여섯의 나이에 새 시집 『봄비를 맞다』를 펴낸 황동규 시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고등학교 3학년 때 짝사랑하던 대학생 누나를 생각하며 쓴 시 ‘즐거운 편지’는 교과서에도 실린 ‘국민연애시’가 됐다. 발표 당시에는 “고등학생이 어떻게 ‘사소함’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가 문단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Q : 60년도 더 지난 시인데 요즘 세대의 감수성을 건드립니다.
실제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랑한다는 절절한 외침도 없고, 처음엔 이 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요(웃음). 그 분이 초등학교 동창의 언니라 예순이 넘은 나이에 한 번 같이 만난 일이 있는데, ‘이제서야 이 시가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Q : 왜 시가 그렇게 좋았나요.
A : 아버지(소설가 황순원)는 문학의 길이 힘든 걸 아시니 제가 법대나 의대에 가기 바라셨어요. 하지만 문학과 음악에 푹 빠져 있던 터라 고집을 부려 서울대 영문과에 갔습니다. 원래는 음악을 좋아해 작곡가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살짝 음치인 걸 깨닫고 포기했어요. 시가 좋았던 것은 문학의 모든 장르 중 음악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Q : 시인으로서의 삶은 평탄하셨을 것 같은 느낌인데요.
A :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기만 하겠어요. 1978년 나온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는 전두환 계엄령 하에서 검열에 걸릴까 봐 허가를 받지 않고 몰래 찍어내기도 했습니다. 권력과 직접적으로 맞서는 시는 타고난 성향 상 맞지 않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장’ 자리를 가급적 맡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도 시인으로서의 나를 지키는 원칙 중 하나였지요.

Q : 66년간 시를 쓰셨는데 ‘즐거운 편지’로 기억되는 것이 서운하지는 않으신지요.
A : (새 시집을 가리키며) 늘 새로운 시가 나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면서 씁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고 시간이, 역사가 정하는 것이니까요.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만 해낼 뿐이지요.
황 시인은 요즘도 “하루 이틀 건너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날은 시를 매만지며 보낸다”고 했다. 남은 생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시가 내 생명이니 계속 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 한세상/ 노래 배우는 새처럼 왔다 간다/ 목소리에 금가면/ 낙엽지는 나무에 올라/ 시를 외우다 가겠다”고 쓴 ‘괴짜 노시인’은 헤어질 때도 만날 때처럼 손을 번쩍 들더니 훌훌 자리를 떠났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