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시대, 달러보다 금 더 산다는 중앙은행들…한은은 '잠잠'
미국 고금리 장기화 속에 강달러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각국 중앙은행이 달러 대신 '더 안전한 자산' 금(金) 보유 비중을 늘릴 거란 전망이 나왔다. 이미 중앙은행들이 금 매입에 나선 상황에서 금값 강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세계금협회(WGC)는 전 세계 중앙은행 준비자산 담당자에 대한 연례 설문조사 결과(올해는 70곳 대상)를 공개했다. 이들의 29%는 내년까지 자체 금 보유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해당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선진국 중앙은행의 57%는 향후 5년 내로 금 비중이 확대될 거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조사(38%)보다 크게 오른 수치다. 반면 달러 비중이 줄어들 거라고 전망한 선진국 중앙은행 비율은 1년 새 46%에서 56%로 늘었다. 대체로 중국 등 신흥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경향이 뚜렷했는데, 선진국도 '금 랠리'에 함께 뛰어드는 셈이다.
실제로 각국 중앙은행은 2022년부터 금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 이들이 매입한 금은 1037t으로 2022년(1082t)에 이어 사상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2010년부터 금 순매입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재기 추세는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WGC는 "점차 커지는 글로벌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금의 장기적 가치 등을 높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러한 기류 속에 금값은 고공행진 중이다. 런던금시장협회(LBMA)에 따르면 18일(현지시간) 오후 기준 금 가격은 1트로이온스(약 31.1g)당 2324달러로 1년 전(1951달러)과 비교하면 19%가량 뛰었다. 지난달엔 2400달러 선을 훌쩍 넘어서면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WGC의 글로벌 중앙은행 책임자인 샤오카이 판은 "가격 급등 등으로 금 매입 속도가 단기적으로 둔화할 수 있지만, 중앙은행들이 금을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는 한 금의 가치는 점진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달러도 미국 경제 호조와 '피벗'(통화정책 전환) 지연 속에 꾸준한 강세를 보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1973년=100)가 18일 기준 105.26으로 '강달러'를 가리키는 식이다.
하지만 달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대(對)러 제재를 피해 러시아와 교역하려는 국가들이 각국 통화 등을 활용하면서 선호도가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재정적자 증가,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긴장 강화도 달러 대신 금 보유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전 세계 외환보유고 중 달러화 비중은 지난해 1분기 59.46%에서 4분기 58.4%로 하락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의 통화 전략가인 오드리 차일드-프리먼은 "최근 달러화와 미 국채 가격 흐름을 보면 (달러가 가지는) 안전자산으로서의 성격에 의문이 든다"면서 "우크라전 이후 위험 기피 심리가 강해지면 금값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금 비중 확대와 거리를 두고 있다. 금 보유량(104.4t)은 2013년 마지막 매입 후 11년째 변동이 없다. 한은의 외환보유액 자료에 따르면 금은 47억9000만 달러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4월 공식 블로그를 통해 금 매입에 대한 '신중론'을 재확인했다. 최완호 한은 외자운용원 운용기획팀장은 "금은 채권 등 전통적 투자 자산보다 외환보유액 운용 대상으로서 유용성이 크지 않다. 국제금융시장에선 (최근) 금 가격이 고평가됐다는 견해가 우세하다"면서 "국내 외환시장 전개 상황, 국제 금시장 동향 등을 점검하면서 금 투자 시점·규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이러한 입장에서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햇반까지 비닐에 욱여넣었다…동생의 고독사, 누나의 ‘득템’ | 중앙일보
- 모친 살해한 '전교1등' 아들, 13년 만에 고백 "두 아이 아빠 됐다" | 중앙일보
- "왜 신차 비닐 안 뜯습니까"...현대차 싹 뜯은 '정의선 스타일' | 중앙일보
- 톱스타 한명 없는데 시청률 터졌다…'우영우' 이은 대박 드라마 | 중앙일보
- "1억 주면 조용히 있겠다"…공정위 신고전 백종원 압박한 점주들 | 중앙일보
- 60대 할머니 몰던 차, 주차장 벽에 '쾅'…10개월 손자 숨졌다 | 중앙일보
- "중국인 왜 남의 나라 더럽히나"…제주 도로서 바지 벗고 대변 '충격' | 중앙일보
- "촉감 궁금해" 노골적 성적요구 강요받았다…하남 교제살인 전말 | 중앙일보
- 팀 동료가 손흥민 인종차별…토트넘 침묵에 서경덕 "FIFA 고발" | 중앙일보
- "부친과 보기 좋았는데…" 이 질문에 박세리 눈물, 수십초 침묵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