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경 온 청년이 남아공 선교사가 된 사연은

유경진,김수연,박윤서 2024. 6. 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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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리부트: 2024 캠퍼스 선교]
<상> 1974~2024:믿음의 추적기
한국교회 부흥의 시발점이 된 '엑스플로74 대회' 참가자들을 50년이 흐른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만났다. 백발의 노인이 된 이들은 광장을 둘러보며 당시 대회를 회상했다. 왼쪽부터 윤철 간사, 정인수 목사, 임만호 장로, 박영률 목사, 이권상 간사. 장진현 포토그래퍼


김종식(77) 간사는 ‘엑스플로74 대회’를 떠올리며 “기막힌 날의 연속이었다”며 “나라의 모든 관심이 대회에 향해 있었고 엑스플로 천지였다”고 말했다. 50년전 기억을 회상하며 상기된 그의 목소리는 당시 엑스플로74의 열기를 짐작게 했다.

엑스플로74 대회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대표 박성민 목사)가 1974년 8월 13일부터 엿새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개최한 대규모 선교대회다. ‘예수 혁명’ ‘성령 폭발’을 주제로 내세운 대회 등록자는 32만3419명(주최 측 공식 집계)에 달했다. 한국CCC 창립자 고 김준곤(1925~2009) 목사의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구호에 반응한 30만명이 넘는 청년은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왔다. 한국교회 부흥의 시발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 간사가 엑스플로에 참가하게 된 건 서울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전남대학교 수의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선배의 제안으로 1973년 민족복음화요원 순장훈련에 참여했다. 완행열차 13~14시간을 타고 서울에 올 정도였다.

CCC가 1974년 8월 서울 여의도광장에 개최한 '엑스플로74 대회' 전경.


그는 “김준곤 목사님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는데 그 말씀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면서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잠자리에 들 때도 김 목사님의 목소리가 너무 선명해 가슴이 뛰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남아공 선교사인 김 간사는 엑스플로74 대회에서 홍보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그 시절엔 하룻밤 자고 나면 교회 2개가 생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난 17일 엑스플로74 대회가 열렸던 여의도 광장에서 대회에서 활약했던 다섯 명의 참가자를 만났다. 20~30대 건장한 청년이었던 이들은 어느덧 지팡이를 지고 흰 머리가 나는 노인이 됐다. 광장 가운데에 서서 주변을 돌아본 이들은 완전히 바뀌어버린 풍경에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들은 광장 곳곳을 가리키며 잠들어있던 기억을 깨웠다.

당시 서무부장으로 활동했던 임만호(84) 장로는 오랜 기간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엑스플로 성회 기억 덕분이라고 했다. 임 장로는 “7살에 처음 교회를 다닌 이후로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살아계심을 의심한 적이 없다”며 “엑스플로에서 받은 은혜와 경험이 밑거름돼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엑스플로74 대회 기간에는 밤샘기도가 이어졌다. 임 장로는 밥과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은 시기였다고 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가는 법을 알게 됐어요. 오늘날 기도는 무언가를 얻는 수단으로 전락했는데 당시 성회는 기도 그 자체가 목적이었어요.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해 기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같은 자리에 있던 청년들도 기도의 열기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생명을 건다는 각오로 참가한 이도 있었다.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었지만, 육체적 배고픔은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이기지 못했다. 청소년CCC 대표였던 박영률(81) 목사는 “엑스플로74에 내 생명을 내놓고 했었다”며 “기도의 위력을 배운 시간이었다. 기도운동이 일어나야 선교가 회복되는데 앞서 교회와 목사, 신학 교수와 성도들까지 모두가 회개운동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신앙의 선배는 신뢰도를 잃은 한국교회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도 건넸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목회데이터연구소와 지난해 1월 5일간 성인 남녀 1000명 대상으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74%가 (한국교회 신뢰도는) 부정적이라고 인식했다. 2020년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신뢰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인식은 63.9%에서 10%p 이상 증가했고 ‘신뢰한다’는 긍정적 인식은 31.8%에서 21%로 10%p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2022년 성인 91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신앙의식 조사’에 따르면 종교인은 37%, 무종교인은 63%로 1998년 조사 이후 역대 최저치였다.

박 목사는 한국교회가 명예주의와 이기주의, 맘몬주의에서 벗어나 회개해야 부흥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타락하면 선교단체를 통해 교회를 깨우신다”며 “선교단체와 교회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부흥을 위해서는 기도의 열정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경진 김수연 박윤서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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