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관객에게 '다른 세상 온 듯한' 경험 주는 곳"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국립극장은 국내를 대표하는 3대 공공 극장이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두 곳에서 수장을 지냈다. 2021년 10월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취임하기 전 2012년부터 5년여간 국립극장 극장장을 역임했다. 예술의전당에서도 요직을 거쳤다. 1984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해 23년간 근무했고 공연사업국장, 예술사업국장 등을 지냈다.
세 기관의 가장 큰 차이는 산하 예술단체의 유무다. 예술의전당은 산하 예술단체가 없다. 반면 국립극장은 산하 예술단체가 3개(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있고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극단, 서울시오페라단 등 8개나 된다.
조직이 복잡한 만큼 안 사장이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다. 안 사장은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바쁜 중에도 짬을 내어 극장에서 조용히 앉아 공연을 즐긴다고 했다. "머리가 아프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극장에 들어가 혼자 공연 감상하면서 위로받거나 영감을 얻을 때가 많았다. 공연이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통로이기도 해서 국립극장이나 예술의전당에 있을 때 또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자주 공연을 보려고 한다. 온종일 사무실에서 서류 결재에 시달려도 공연장 객석은 일터가 아닌 낯선 곳에 온 것처럼 매번 설레게 만든다."
세종문화회관의 조직과 업무는 향후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창단하는 서울시발레단도 관리도 맡았고 2028년 개관 50주년을 맞는 세종문화회관이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하 예술단체 공연 수입 60~70억원 목표
안호상 사장은 공연 제작극장으로서 세종문화회관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예술의전당은 예술 단체가 없는 극장이다.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은 설립 때부터 예술단체가 있었다. 산하 예술단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자체 제작 공연을 늘려야 한다."
자체적으로 작품을 만들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관객은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을 선호한다. 이는 극장 수입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안 사장도 그동안 산하 예술단 공연 비중이 작았던 이유가 관객과 수입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 사장은 "세종문화회관이 산하 단체를 배제하고 외부나 해외 예술가를 초청해 공연하면 우리 예술가들은 점점 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 사장은 취임 후 과감하게 산하 예술단체 공연 비중을 높였고 다행히 성과를 보였다.
지난해 산하 예술단체 공연의 유료 관객은 약 45% 증가하고 수입도 57% 늘었다. 산하 예술단체 공연 수입은 2022년 21억원에서 지난해 33억원으로 증가했다. 안 사장은 산하 예술단체의 제작비가 연간 70억원 정도 된다며 제작비만큼 수입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목적은 아닌데 그래도 세종문화회관이 국민의 세금을 쓰는 곳이고 세금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우리가 벌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수입을 늘려야 한다. 한 60억 내지 70억 정도는 우리가 벌어야 하지 않나 하는 나름의 목표를 갖고 있다. 지금 산하 예술단이 공연 제작비로 약 70억 정도를 쓰고 있는데 적어도 제작비 정도는 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산하 예술단체 공연이 모험이지만 성공 시 보상은 크다. 레퍼토리화해서 주기적으로 공연을 하면서 수익을 계속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공연의 경우 예술가들의 일정 자체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 레퍼토리화되기가 쉽지 않다.
"외부 단체와의 작업이 훨씬 더 수월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작이 쉬운 반면에 재공연을 하기에 힘든 면도 있다. 좋은 작품을 제대로 만들 수만 있다면 산하 예술단체가 있는 게 유리하다."
광화문에 클래식 전용홀
세종문화회관은 오는 2028년 개관 50주년을 맞는다. 이에 맞춰 서울시는 현재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을 리모델링하고 여의도에 제2 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은 건물 자체도 오래돼 리모델링에 대한 요구가 지속돼왔다. 클래식 공연을 할 수 있는 음향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특히 서울 강북 클래식 애호가들의 불만이 높았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릴 때면 왜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이 아니고 하필 세종문화회관이냐고 한탄이 나올 정도다.
안 사장은 클래식 전용홀과 관련해 현재 연극과 뮤지컬 공연이 주로 이뤄지는 M씨어터 공간을 새롭게 콘서트홀 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M씨어터가 있는 공간을 1800석짜리 콘서트홀과 500석짜리 챔버홀을 위 아래로 짓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그 공간을 전면적으로 콘서트홀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오는 8월 공식 창단하는 서울시 발레단은 세종문화회관이 당분간 운영과 관리를 맡는다. 세종문화회관이 당분간 운영과 관리를 맡는다. 서울시 발레단은 1962년 국립발레단, 1976년 광주시립발레단이 창단한 뒤 무려 48년 만에 출범한 세 번째 공공 발레단이다. 지난 4월 창단 사전 공연 '봄의 제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오는 8월 창단 공연 '한여름 밤의 꿈', 10월 더블 빌 공연을 잇달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서울시 발레단은 컨템포러리 발레단을 표방한다. ‘백조의 호수’, ‘지젤’, ‘호두까기 인형’ 등 클래식 발레와 달리 컨템포러리 발레는 인지도가 낮고 관객들의 관심도 적은 편이다.
안 사장은 "컨템포러리 발레 공연을 하는 것이 부담이긴 하다. 클래식 발레를 선호하는 대중들의 취향과 경험도 변화시켜야 한다. 컨템포러리 발레도 ‘백조의 호수’나 ‘지젤’ 작품 못지않게 보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새로운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확장하는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
극장은 속세에서 벗어난 경험 하는 공간
안호상 사장은 예술의전당에 입사하기 전까지 문화예술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 때 전공도 정치외교학이었다. "예술이 좋아서 했다기보다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면서 예술경영 일을 하고 극장 경영자가 됐기 때문에 특정 공연 장르에 선호도가 치우치지 않는 게 나의 장점이다."
다만 안 사장은 여러 공연 중에서도 클래식 음악 공연이 점점 더 좋아진다며 요즘 가장 편하게 보는 공연 장르라고 했다. 클래식 공연에는 언어가 없고 무념무상의 느낌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그래서 속세로부터 벗어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그런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것이 극장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극장은 어떤 편안함이나 기대감을 주는 공간이고, 세상으로부터의 독립된, 즉 속세로부터 분리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곳이다. 관객들이 여기를 넘어서 들어오는 순간 뭔가 다른 세상에 왔다라는 그런 느낌을 갖게 해주고 싶다."
안 사장은 극장 안에서 느끼는 이런 감정을 더 많은 시민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1~12일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 오페라단이 야외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안 사장은 취임 후 광화문 광장을 활용한 문화 활동을 늘렸다. 광화문 광장에서의 공연은 일종의 세종문화회관 극장의 확장이다. 안 사장은 광화문 광장 공연이 고객이 야외에서도 극장 공간을 경험하게 만든 확장 사례라고 했다.
"극장에서 좋은 작품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극장 공간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들이 극장이라는 공간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공기를 만나는 것 같은 그런 변화를 여기서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런데 시민들이 꼭 극장 안으로 들어와서 그런 공기를 만나게 할 수는 없고 때로는 우리가 극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밖으로 나가서 그런 것들을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 호기심이 생겨 극장 안으로 들어오는 게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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