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성 비위 사실 알게 된 다큐 감독의 고뇌

김봉건 2024. 6. 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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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유코의 평형추>

[김봉건 기자]

유코(타키우치 쿠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3년 전 발생한 여고생 괴롭힘 자살 사건 관련 다큐를 제작 중이다. 당시 한 여고생과 교사의 잇따른 죽음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학교의 섣부른 대응과 언론의 그릇된 보도 관행, 여기에 무분별한 SNS 퍼나르기까지 더해지면서 이미 숨진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가해자의 가족 등 또 다른 피해자까지 양산됐다. 이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평소 진실을 추구해 온 유코. 그녀는 사건 이면에 내재된 폭력적 실체를 카메라 앵글에 담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 죽여 살아가는 가해자의 가족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절절한 사연에 귀 기울이고, 취재 방향성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 잡는 방송국과는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등 나름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영화 <유코의 평형추>의 한 장면
ⓒ 미디어캐슬
   
한편 유코는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자신의 아버지인 마사시(미츠이시 켄)를 도와 학원에서 틈틈이 강의하는 등 모자라는 일손을 보태는 중이었다. 최근에는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는 17살 메이(카와이 유)가 새롭게 학원에 등록했다. 편부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 그런지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가 학원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고, 이를 수습하던 유코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이윽고 이 사태의 주범이 바로 학원 원장인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된 유코. 순간 모든 게 무너지고 만다. 

열혈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
 
 영화 <유코의 평형추>의 한 장면
ⓒ 미디어캐슬
   
영화 <유코의 평형추>는 진실을 향해 카메라 렌즈를 정조준해 온 한 열혈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다. 자기 자신이 피사체가 된 상황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온 신념과 사익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적 고뇌를 담아낸 수작이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제20회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각각 수상했다.
마사시는 유코가 추궁해 오자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이참에 메이의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벌을 달게 받자는 마사시. 하지만 유코의 생각은 달랐다. 학원장과 원생 사이의 성 비위는 세간의 이목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만큼 파급력이 큰 사건. 유코가 현재 다큐로 제작 중인 사건처럼 진실과는 별개로 언론 매체와 SNS를 타고 확대재생산되며 수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게 틀림없었다. 
 
 영화 <유코의 평형추>의 한 장면
ⓒ 미디어캐슬
   
그와 동시에 유코 자신을 포함한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무분별한 사적 제재가 가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이러한 메카니즘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유코였기에 그녀는 결국 우회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자신과 마사시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는 행복한 결말을 원했다. 유코는 메이에게 불법 낙태 시술을 종용한다. 발 빠르게 담당 의사도 수소문한다. 
영화는 이후 3년 전 여고생 자살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된 가해자의 가족을 찾아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유코,  그리고 메이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 출입하며 자신의 입맛대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메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일개인으로서의 유코를 대비시키며 두 개의 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전혀 다른 사안이지만 마치 평형을 이룬 듯 정교하게 맞물린 두 사건,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유코. 그녀의 고뇌가 읽히는 지점이다. 
 
 영화 <유코의 평형추>의 한 장면
ⓒ 미디어캐슬
   
극이 절정에 이르면서 거듭되는 반전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은 과연 진실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걸까.

제3자가 피사체였을 땐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다' 라며 절도있게 균형을 맟추던 유코는 자신이 정작 피사체가 되자 한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잠시 혼란을 느끼게 될 관객. 하지만 감독에게 배려심 따윈 없었다. 이 혼돈스러운 감정마저 뿌리째 뒤흔든다. 문득 '아무도 믿지 말라'던 모 영화 광고의 멘트를 떠올리게 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진실이라 믿고 있던 것들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모호함. 유코의 평형추가 가리키는 균형은 과연 무얼까. 

영화 <유코의 평형추>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한 직업인의 이야기이자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회 이슈가 실체적 규명 없이 언론과 SNS를 통해 흥밋거리로 소비되고, 그 과정 속에서 무수한 피해자를 낳는 악순환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 담론을 이끌어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유코의 평형추>의 한 장면
ⓒ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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