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빠른 남자와 1초 느린 여자가 서로에게 닿는 방법
[장혜령 기자]
▲ 영화 <일초 앞, 일초 뒤> 스틸컷 |
ⓒ ㈜블레이드이엔티 |
<일초 앞, 일초 뒤>는 대만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리메이크 작품이다. 전작이 대만 특유의 부산하고 과장된 유머로 재미를 주었다면, <일초 앞, 일초 뒤>는 과거와 현재가 잘 보존된 도시 교토를 배경으로 아기자기함과 청량함을 극대화한다. 조금 빠르고 느리지만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에게 닿기 위한 애틋한 여정이 돌고 돌아 성사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선보인다. 누구에게는 사라진 하루지만 누군가에게는 덤이 된 시차를 통해 오랫동안 이어진 마음을 이야기한다.
▲ 영화 <일초 앞, 일초 뒤> 스틸컷 |
ⓒ ㈜블레이드이엔티 |
남들보다 1초 빠른 남자 하지메(오카다 마사키)는 우체국 직원이다. 늘 한 박자 빨라 사진 찍을 땐 셔터 속도를 앞질러 눈 감고 있는 사진투성이다. 매일 아침 알람보다 1초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퇴근 후에는 맥주를 홀짝이며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지만 언제나 빠른 1초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녀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다리 밑에서 버스킹 하던 뮤지션 사쿠라코와 데이트를 앞둔 전날 기쁜 설렘을 안고 잠에 들었건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하루가 통째로 사라져 버려 당황스럽기만 하다. 어제의 기억은 없고 남은 거라고는 빨갛게 익어버린 술톤 피부. 대체 어제는 어디로 간 걸까.
남들보다 1초 느린 여자 레이카(키요하라 카야)는 한 템포 느려서 손해 보는 게 한둘이 아니다. 달리기도 늦게 출발, 게임을 할 때도 늘 꼴찌였다. 매사에 느긋한 성격 탓에 대학 생활도 쉬엄쉬엄, 아직까지 7학년에 머물러 있다. 게으름 피웠다고 말한다면 무척 억울하다. 지금까지 놀고먹었던 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최근에는 학교 사진실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밖에 없어 더없이 짠한 유급생이 되었다.
레이카의 조용한 삶은 우체국 2번 창구의 하지메를 지켜보며 시작된다. 말 한마디 걸고 싶은 마음이 앞서지만 조용히 하루하루 우표를 사고 편지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믿지 못할 일이 벌어져 인생을 만회할 순간이 찾아온다. 레이카의 필름 카메라에 담긴 찰나는 그동안 제때 당도하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해 주는 선물 같은 기적으로 되돌아온다.
▲ 영화 <일초 앞, 일초 뒤> 스틸컷 |
ⓒ ㈜블레이드이엔티 |
영화는 남녀 주인공 성별을 교체하면서 추가된 인물과 상황으로 소소한 재미를 안긴다. 원작이 발렌타인데이를 앞둔 하루였다면 <일초 앞, 일초 뒤>는 지역 축제를 하루 앞둔 설정으로 전개되어 비밀스러움이 배가 된다. 필름 카메라, 우표, 손 편지, 우체국, 동전 등 아날로그적 향수를 부르며 잊고 있던 과거를 소환한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지된 추억이란 사진에 담겨 영원히 박제되어 버린다.
폭죽이 터지는 순간 세상이 멈추어 버린 판타지는 엉뚱하고 유쾌한 하루를 되돌려 준다. 손 안에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정작 계절이 바뀌는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는 현대인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돌려준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린 사람은 언제나 패배자, 부적응자로 치부해 버려 손해 보는 사람이 생긴다. 영화 속에서는 10년 전 집 나간 하지메의 아빠가 대표적이다.
▲ 영화 <일초 앞, 일초 뒤> 스틸컷 |
ⓒ ㈜블레이드이엔티 |
그래서일까.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바쁜 일상이 버거워진 사람을 울리는 따뜻한 메시지의 여운이 크다. 나를 사랑해 줄 1호 팬은 결국 자신임을 재차 떠올리게 한다. 어떤 삶도 실패가 아니라고 위로하며 속도에 신경 쓰지 않고 직진하는 진심을 차분히 이야기한다. 긴 이름(획수가 많은 이름) 때문에 놓친 시간을 모아 하루치로 환산해 준다는 발상이 동화적이다. 1초 빠른 남자와 1초 느린 여자가 만나기까지 어긋난 타이밍을 모아 만든 귀여운 로맨스 영화다.
당장 교토행 티켓을 끊게 만드는 고즈넉한 풍경과 귀를 간질이는 OST는 덤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로 주목받은 '오카다 마사키'의 사투리 연기와 억울한 표정은 냉미남 이미지를 버리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에서 당찬 대학생을 연기한 '키요하라 카야'가 서정적이고 순수한 분위기를 풍겨 잊을 수 없는 매력을 선보인다. 특히 <괴물>로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상을 받은 '히이라기 히나타'가 하지메의 어린 시절로 분해 존재감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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