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인데도 바다 구경 못한 부부... 안타까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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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형 기자]
▲ 분리장벽은 도시감옥이다. |
ⓒ 구교형 |
이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 쓰고 싶은 주제에 가장 적합해 보여,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연제 제목으로 빌려 쓰기로 했다. 다만, 영화와는 다르게 일상과 삶의 현장 이야기를 담겠다고 밝혔다.
같은 여행을 떠나도 지역과 그곳 사람들의 삶은 지나치고 이방인이나 소비자, 관광객으로 남을 수도 있고, 잠깐이나마 그곳과 사람들의 이야기에 함께 거할 수도 있다. 요즘만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의 이야기가 절실할 때가 있을까?
몇 해 전 방문했던 기억과 경험을 소환하여 그 땅에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사람들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국적이나 소속을 따질 여지조차 별로 없이 그 자리에서 그저 주민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침공 후 가자지구 안에서도 남쪽 마지막 귀퉁이까지 밀려났다. 가만히 앉아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밖으로 탈출할 길도 봉쇄된, 비참하고 비인도적인 상황에 놓였다.
분리 장벽과 체크포인트
나는 2010년 팔레스타인 땅을 방문했다. 물론 (출입 허가가 나지 않는) 가자지구가 아닌, 자치정부가 있는 요르단강 서쪽 땅이었다.
가자지구는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의 지배와 통치를 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상황이 얼마나 열악하고 처참한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주로 기독교 사회운동 현장 운동가인 우리는 그동안 들어왔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차별, 분리, 감시와 처벌, 체포와 구금, 고문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외부에 알리자는 취지로 여행을 떠났다.
취지가 이러했기에 일반 관광객과는 다른 관점, 다른 현장을 밟아갈 코스를 선택했다. 그 땅 자체가 워낙 색다른 자연환경과 오래된 문화유산, 유적지가 많아 곳곳마다 관광객은 넘쳐났고, 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의 성지인 만큼 각 종교의 성지순례객들만도 일 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그 지역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분리 장벽이니, 유대인 정착촌이니, 체크포인트(검문소) 같은 낯선 용어들도 제법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어떤 코스와 지역을 택하며, 누구 안내를 받느냐에 따라 보고 듣는 것이 천차만별인 땅이다.
이스라엘의 통제를 받는 그들의 일상, 즉 이동 자체가 얼마나 불편하고 두려울 수 있는지 우리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분리 장벽은 말 그대로 길고 거대한 도시 감옥이다. 도시와 도시가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유대인 지역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6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을 수십 km씩 둘러놓았다.
도시 감옥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그곳 사람들은 아이,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매 순간마다 줄을 서서 방문 목적을 확인받고, 때로 소지품 검사까지 받으며 체크포인트를 통과해야 한다. 분리 장벽과 체크포인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나 주민들과 상의해서 만든 게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가 자국 안보와 자국인 편의만 생각해 일방적으로 만든 시설이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활권은 제멋대로 분리되었다.
학교, 직장, 병원, 관공서 등을 가려고 해도 그들은 항상 줄 서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과거에는 거주하고, 놀러 가고, 학교 가고, 일하러 다니던 같은 동네였음에도, 분리 장벽을 둘러서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또한, 분리 장벽과 체크포인트는 그들에게 불편하고 두려운 곳만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사람인 가이드는 어느 날 우리를 체크포인트 가까운 분리 장벽 주변으로 데려갔다. 그 주변 곳곳에는 시커멓게 변색 되고, 굳은 사람들의 용변들이 널려 있었다. 검문소 통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용변이 급하면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분리 장벽 주변 곳곳에서 스스로 해결한 흔적들이다.
기막힌 것은 주민에게는 도시 감옥이겠지만, 그런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관광객에게는 분리 장벽도 해맑게 기념사진 찍으며 구경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된다는 점이다. 일반 관광객은 큰 도로, 허가지역만 돌아다닐 뿐 아니라 민감한 곳을 간다고 해도 이스라엘 입장에서 해설하는 가이드가 붙기 때문에 사실상 팔레스타인들이 겪는 현실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유적이나 종교 성지 주변에도 우리 같은 외국 관광객은 어디든 개의치 않고 넘나든다. 하지만 그곳 주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배치된 젊은 이스라엘 남녀 군인들은 함부로 총구를 들이대고 차량 트렁크를 열고, 소지품을 뒤졌다.
▲ 날마다 체크포인트를 거쳐야 하는 주민들 일상 |
ⓒ 구교형 |
우리 일행은 몇몇 현지인들 집에서 나눠 지냈다. 나는 다른 두 명과 함께 40대 초반쯤 된 부부 집에 묵었다. 그들은 제법 집도 크고, 넉넉하게 사는 편인 것 같았지만, 가족들과 바다 구경을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지중해와 면해 있는 가자지구와 반대로 내륙의 서안 지역 주민들은 그 나이 되도록 아직 바다 구경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다가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당국의 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지역은 분쟁과 온갖 사연이 많은 땅이었다. 기원전 6세기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나라를 완전히 잃은 이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그리스)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으며 독립과 해방을 꿈꾸었다. 그러나 예수 시대 직후 로마 제국에 철저히 진압되고 살육당한 뒤, 많은 이방인들이 민족과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름에도 공존했던 땅이다.
그러나 20세기 유럽의 이념, 정치, 종교가 침투해 들어오면서 100년 가까이 다시 분열과 증오, 전쟁과 테러의 온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 예루살렘은 기독교(그것도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유대교, 이슬람의 성지가 되면서 전 세계 종교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땅에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 입장에선 '상시적 분쟁터'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더 커질 뿐이다.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도 종교가 세계와 인류에 끼친 해악을 부정할 수가 없다.지금도 자기들이 중시하는 종교 절기마다 상징물을 앞세운 성직자 뒤를 수많은 신도가 뒤따라가며 종교의식을 거행하지만, 그럴 때마다 지역은 비상이 걸리고 치안과 안전에 위험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목사인 내가 다른 종교는 대변할 수 없지만, 확신컨대 최소한 그건 예수의 마음은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 피와 땀의 범벅이 되어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 그를 애도하며 그 뒤를 따르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때 예수가 뒤를 돌아보며 오히려 그들을 측은히 여기며 이렇게 말한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장 28절)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쟁의 역사를 이어온 예루살렘의 한많은 여인네들을 측은히 여기는 주님은 자신을 위해 울기보다는 도리어 평화가 깨진 그들의 슬픈 삶을 애도하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 종교인들이 지금 예루살렘을 비롯한 그 땅을 성지라 부르며 주기적으로 순례하며, 예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유 여하를 떠나 종교가 평화를 만들어내기보다 분열과 증오, 미움만을 더 확대한다면 그 종교는 스스로 자기 존재 기반을 허물고 말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속히 평화와 공존의 소식이 찾아 들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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