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월드+]27년만의 프랑스 의회 해산, 마크롱의 도박
유럽의회 선거서 집권당 2배
소수 정부 탈피 위한 승부수
극우 집권반대 결집 나섰지만
공화당·좌파정당은 독자 노선
전통적 공화주의 전선 분열
극심한 갈등에 금융시장 혼란
프랑스의 상황이 심상찮다. 우량주 중심의 CAC40지수는 한 주 만에 6.2% 폭락하면서 2022년 이후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중형주의 경우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아 9% 하락했는데 이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혼란 이후 최대 낙폭이다. 채권시장도 좋지 않다. 프랑스와 독일 10년물 국채의 스프레드는 78bp(1bp=0.01%포인트)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는 2012년 유로존 위기 이후 최대 폭이다. 프랑스 국채에 대한 선호가 급속히 악화함에 따라 프랑스 정부의 차입 비용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 경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프랑스 금융시장의 혼란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해산과 임시선거 결정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6월 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이 31.5% 득표한 데 비해 자신이 이끄는 집권당인 르네상스의 득표율이 14.6%에 머무르자 헌법 제12조에 따라 아직 임기가 3년 남아있는 의회를 해산하고 임시 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1997년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의회 해산을 결정한 이후 27년 만의 일이다.
총 577석의 프랑스 의회 선거는 2차 단순 다수결 방식으로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50% 이상을 득표하고 전체 유권자의 25% 이상 지지를 받을 경우 당선이 확정되고, 만약 없을 경우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2명과 총 유권자의 12.5% 이상을 얻은 후보를 대상으로 1주일 후에 다시 투표한다. 1차 투표에서 당선되는 경우는 소수이며 2차 투표의 경우 3~4인의 투표가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 합종연횡에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복잡해 보이는 이런 시스템은 정치적 극단에 위치한 정당 후보자가 선출되는 것을 어렵게 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이번 선거는 6월 30일과 7월 7일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마크롱 대통령이 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재 그가 소수 정부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의회의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에 부여된 헌법적 권한을 행사해 법안을 통과시켜왔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이런 상황을 끝내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를 제외한 나머지 정치 세력들이 극우 집권 반대를 위해 일치단결하는 전통적인 공화주의 전선을 결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이슬람, 난민수용 반대, 공권력 강화, 유럽연합(EU) 탈퇴 등을 주장하면서 국민연합이 지속해서 지지세를 확대해오고 있지만 아직은 국민연합 노선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고, 반대 세력을 결집할 경우 국민연합을 패배시킬 수 있다고 마크롱 대통령은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인 자신과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한 결집이 이루어진다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승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데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연합은 전체 선거구 가운데 93%에서 1위를 달성하고 있다. 현재 88석인 국민연합이 이번 선거를 통해 약 250석까지 의석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마크롱 대통령의 도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연합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단결해서 반 국민연합 전선을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파에 해당하는 공화당이 국민연합과 제휴할 수 있음을 내비치면서 한바탕 소란이 빚어졌고, 13일에는 좌파 4개 정당도 별도의 독자노선을 추진할 것을 결정함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은 좌초할 가능성이 커졌다. 1차 투표 이후 여론조사 지지율 순위는 국민연합 34%, 좌파 연합 22%, 르네상스 19%, 공화당 9% 순으로 나타났는데 이 경우 르네상스는 소수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만약 선거에서 국민연합이 승리를 거둔다면 국민연합에 총리를 포함한 내치와 관련한 권력을 넘겨주게 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연합이 구호가 아닌 정책으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공약을 달성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국민연합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줌으로써 202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프랑스가 향후 3년 동안 극심한 갈등과 분열로 큰 혼란을 겪을 수 있으며 금융시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념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 중도 노선을 주창하면서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집권 이후 노동유연성 강화, 대폭적인 법인세 감면, 스타트업 육성을 내세우면서 양호한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기록했고 전기차 등 첨단제조업에서의 재산업화를 추구하는 등 경제적 측면에서 성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했으며 난민과 이슬람 세력의 향상으로 인한 국민의 불만과 두려움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국민연합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세력을 포괄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했지만 엘리트주의에 입각한 그의 독선적 노선은 덧셈이 아닌 뺄셈의 정치로 귀결되면서 지지기반 위축으로 이어졌다. 이에 비해 국민연합은 지속해서 국민들의 불만을 자극하면서도 실제 노선에서는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점차 지지기반을 확대해왔다. 지방선거를 통해 집권한 지역에서 큰 문제 없이 행정을 운영하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극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완화해왔고 이제 현실 정치세력으로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승리한다면 아직 극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극우 세력의 기세를 꺾을 수 있겠지만 패배한다면 유럽 전역에서 극우 흐름의 강화를 더욱 가속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이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도 도널드 트럼프에게 유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글로벌 법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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