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입법청문회 '절묘한 한수', 통했다
[이충재 기자]
▲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이 21일 입법청문회에 출석하기로 했다. |
ⓒ 오마이뉴스/연합뉴스 |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관련자들이 21일 국회 증언대에 대거 오르기로 하면서 '입법청문회'가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입법 현안에 관련된 정보와 전문적 지식 청취를 목적으로 국회법에 규정된 입법청문회는 그간 거의 열리지 않았지만 이번 '채 상병 특검법'을 계기로 활용성을 인정받게 됐습니다. 채택된 증인이 출석을 거부할 경우 실질적 제재가 가능한 청문회의 특성이 채 상병 사건 관련자들의 증인 출석을 이끌어낸 것으로 분석됩니다. 여당 반발로 공전 중인 국회 상임위 활동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절묘한 한수'라는 평이 나옵니다.
입법청문회 구상이 제기된 것은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이 구성한 '삼권분립 정상화' 회의체였습니다. 공무원들의 국회 상임위 불참 등을 막기 위한 입법 논의 자리였는데, 여기서 현행 제도로도 가능한 행정부 견제 장치를 찾다 입법청문회 개최 아이디어가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뒤따라 22대 국회에서는 입법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각종 입법이 대통령 거부권에 막히더라도 입법청문회 등을 동원해 정부 견제와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입법청문회는 여당 불참으로 국회 정상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국정조사의 경우 본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입법청문회는 재적상임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가 있으면 개최가 가능합니다. 증인으로 채택되면 국회법에 따라 법적인 구속력이 부여되는데, 출석은 의무고 동행명령장을 발부해 강제로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거부할 경우 고발을 통해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처럼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나 현안 질의에 장관들이 불출석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 최주혜 |
채 상병 사건 증인들이 줄줄이 출석하기로 한 데 고무된 민주당은 입법청문회를 더 확대할 계획입니다. 국회 정무위원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김건희 특검법'을 명분으로 입법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김 여사를 포함한 핵심 관계자와 해당사건을 무혐의 종결처리한 국민권익위 위원 15명 전원 등에 대한 증인 신청도 검토할 예정입니다. 과방위도 '방송 3법' 입법청문회를 열고 김홍일 방통위원장 등을 증인으로 부른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야당 주도의 입법청문회 잇단 개최는 꽉 막힌 여야 원구성 협상에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정무위가 김 여사를 명품백 수수 의혹의 증인으로 채택할 경우에 대비해 남은 7개 상임위 중 정무위원장을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옵니다. 민주당이 입법청문회에서 정부를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는데 여당이 정부를 방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용산에서 나오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21일 개최되는 채 상병 청문회에서 야당이 성과를 낸다면 국민의힘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마냥 좋아할 상황도 아닙니다. 채 상병 청문회에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여론의 질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당으로선 단독청문회인만큼 여당의 정부 엄호성 발언이 없어 일방적으로 증인들을 몰아붙일 수 있는데다, 질의 시간도 여당 몫까지 차지하는 등 진상을 규명할 조건은 충분한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맹탕 질문으로 의혹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비난은 민주당에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청문회는 채 상병 순직 당시 상황과 책임소재, 수사외압 의혹의 실체를 드러내는 기회입니다. 수사외압 가해자이자 대통령실 연결고리로 지목된 이종섭 전 장관과 임성근 전 사단장, 피해자격인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함께 의원들 질의에 답하는 자리가 마련된 셈입니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의혹의 실체가 상당 부분 확인된다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도 조만간 재발의될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채 상병 특검이 왜 필요한지 입증해야 할 책임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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