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중 1명 주 35시간 이하 근무… 전일제 정규직과 임금은 같아
“네덜란드에선 이미 많은 이들이 근로시간을 줄이고 시간제로 일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직원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죠.”
네덜란드의 정보기술(IT) 컨설팅업체 ‘블루브릭스’를 운영하는 로날드 판 스테이니스 최고경영자(CEO)는 독특한 사무실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회사는 암스테르담 도심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알펀안덴레인 지역에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찾은 블루브릭스는 자연에 둘러싸인 별장을 연상케 했다. 산책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자 갈대로 엮은 삼각형 모양의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주위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 곳곳에 쉼터가 조성돼 있다. 운동시설은 물론 캠프파이어 시설도 있다. 사무실은 직원들에게 24시간 개방돼 때로는 여가 공간으로도 쓰인다.
로날드 CEO는 “네덜란드는 녹색지역 보호를 위해 회사를 도시 안에 두도록 제한한다”며 “이곳에 회사를 만들기 위해 정부에 특별히 예외 규정을 얻어내야 했다”고 말했다.
로날드 CEO가 자연친화적 사무공간을 마련한 건 직원 150명이 다양한 환경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고 의욕적으로 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주어진 근로시간 안에 업무 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이 회사의 직원 21%는 주35시간 이하로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제’는 주40시간 일하는 전일제 정규직과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차이가 없고, 근로시간만 줄어든 형태를 말한다.
네덜란드는 이 같은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35.1%에 달해 ‘시간제 근로자의 천국’으로 불린다. 정부는 법률상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근로자에게 근로시간과 장소 등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시간제 근로가 보편적으로 정착하면서 네덜란드는 2022년 기준 연간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00시간 이상 적은 국가(1361시간)가 됐다. 이러한 유연근무제도 덕분에 네덜란드의 출산율은 최근 30년간 꾸준히 1.5명을 웃돌고 있다.
블루브릭스는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보다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근무체계를 운영한다. 직원들은 한 달 전에만 회사에 고지하면 매달 자신의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재택근무 횟수의 제한이 없고 전기세 등 명목으로 지원금도 지급된다. 과도한 초과근로가 발생하면 회사가 이를 조절하지만 기본 원칙은 근로자 스스로 근로시간을 기록·관리하는 것이다. 글로벌기업 평가 플랫폼에서 이 회사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평점은 4.7을 기록하고 있다.
로날드 CEO는 “근로자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근로 환경을 조성하려면 주40시간 전일제 근무만 고수해선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워라밸 지원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2017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매출이 4배 이상 올랐다”며 “번아웃(정신적·심리적 탈진)을 막기 위해 적절한 근로시간과 근무환경 등을 제공한 것이 직원 만족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블루브릭스가 중소기업의 대표적인 워라밸 기업으로 꼽힌다면 소프트웨어 기업인 AFAS는 대기업의 워라밸 선두주자다. 약 7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AFAS는 내년부터 주4일제 근무를 전면 시행할 예정이다. 이는 근로자의 요구가 아니라 경영진의 결단으로 이뤄진 것이다.
AFAS는 직원의 20%가 넘는 170여명이 주40시간보다 적게 일한다. 대부분은 주32시간 근무한다. 지난 11일 뢰스덴 지역 본사에서 만난 바스 판더 펠트 CEO는 “이미 전일제와 시간제 근로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중요한 것은 직원의 워라밸이다.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주4일제로 전환하더라도 임금은 줄지 않고, 인사고과 기준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AFAS 본사는 각종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시연과 세미나, 콘서트 등이 열리는 문화·전시 공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회사 내부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다채로운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전문 셰프가 제공하는 점심·저녁 식사와 실내체육관 등 사내 복지도 눈에 띈다. 직원의 창의성을 끌어올리고 능률을 높이기 위한 투자다.
AFAS 임원들은 ‘어느 정도가 번아웃을 부르는 과한 근로시간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네덜란드는 하루 8시간 근로가 맥시멈(최대치)”이라고 답했다. 네덜란드에선 주40시간 이하 근로시간이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바스 CEO는 “많은 이들이 성과와 일에 집중하지만 아이를 갖는 순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며 “창의적인 업무를 하기 위해선 운동이나 여가 등 각자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4일제 실현을 위해) 회의 횟수를 줄이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업무 툴을 활용해 생산성을 유지할 것”이라며 “더 많은 여가가 창의성을 발휘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알펀안덴레인·뢰스덴=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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