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찾는 與, 국정원 소환 野…그렇게 때리더니 '선택적 신뢰'

이창훈 2024. 6.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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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그룹의 대북 송금 사건으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더불어민주당이 국가정보원을 연달아 소환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주도한 민주당이 정작 이재명 대표 방어를 위해 국정원이 대북 첩보용으로 작성한 문서를 ‘사건 조작’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판에 출석하며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표는 18일 페이스북에 “방북용 송금이라는 검찰 주장을 베껴 쓰면서 주가 조작용 송금이라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 비밀 보고서는 외면하는 것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언급한 국정원 비밀보고서는 2020년 1월 생산된 문건이다. 북한의 대남공작원 리호남이 대북 브로커 출신 제보자에게 한 발언이 담겨있다. “대북사업으로 쌍방울 계열사 주가를 띄워주는 대가로 수익금 일부를 받기로 했다”, “쌍방울이 (주가조작으로 얻은) 수익금을 1주일에 50억원씩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이를 근거로 쌍방울이 이 대표 방북이 아니라 계열사 주가 조작을 위해 북한에 달러를 건넸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 전 부지사는 이 대표 경기지사 시절 쌍방울 그룹의 방북 비용 대납 혐의 등이 인정돼 최근 1심에서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때 재판부는 국정원 문건에 대해 “제보자 진술일 뿐 주가 상승과 수익금 조성 방법 등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며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쌍방울의 대북송금은 경기도지사 방북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전달된 돈으로 방북 관련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지난 12일 이 대표를 쌍방울 대북송금과 관련한 제3자뇌물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민주당은 법원과 언론이 쌍방울 그룹의 주가조작 정황이 담긴 국정원 문서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중이다. 민주당과 이 대표 입장에선 쌍방울·경기도의 대북 송금 대납 관계를 끊어야 이 대표까지 이어질 책임을 차단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법원 출석에 앞서 “국정원 기밀보고서가 맞겠냐 아니면 조폭 출신으로 주가 조작하다 처벌받은 부도덕한 사업가의 말이 맞겠냐”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국정원 문서의 신뢰도를 높게 평가하자 여권에서는 “아이러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은 여당이던 2020년 12월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권을 없애고, 대공 수사권은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안보 수사 역량과 안보 공조 약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반대했다. 당시 국회 정보위원회 사정을 잘 아는 한 전직 의원은 “본인들에게 유리하니 국정원을 추켜세우지만, 당시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박탈은 물론 간판까지 내리려고 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의 ‘이재명 사법파괴 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유상범 의원은 18일 CBS 라디오에서 “해당 보고서에는 실제 대북 사업을 추진했다는 내용도 같이 들어있다. (민주당이) 일부 내용만 발췌해서 이야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날 면담에서 추 원내대표는 오 공수처장에게 채상병 사망사건 신속 수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정치권의 선택적 신뢰는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 부결 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 결과를 내놓기를 촉구하고 기다린다”며 “결과를 보고 미진하다면 한 점 의혹 없도록 특검을 추진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선 기간 공수처 폐지까지 공약으로 거론했던 국민의힘에 공수처의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 수사가 특검법 반대의 명분이 된 셈이다. 추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오동훈 공수처장을 만나 신속한 수사를 재차 당부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정치권이 검·경과 감사원, 권익위원회 등의 수사와 조사는 불신하고, 본인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태도가 오히려 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깎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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