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진짜 현실을 바라보라

2024. 6. 1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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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예수님께 아무런 책망도 받지 않은 두 교회 중 하나다.

그래서 그런 교회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서머나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가 많다.

그런데 1세기 당시 서머나교회가 마주하던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두 번째로 서머나교회가 겪고 있던 환난은 '비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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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교회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예수님께 아무런 책망도 받지 않은 두 교회 중 하나다. 그래서 그런 교회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담아 ‘서머나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가 많다. 그런데 1세기 당시 서머나교회가 마주하던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들의 환난을 아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궁핍’으로서 성도들이 처했던 경제적 어려움을 의미한다. 당시 서머나는 굉장히 부유한 도시였다. 그러나 서머나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경제 활동의 중심인 조합으로부터 자의로든 타의로든 배척당해야 했다. 그래서 많은 성도가 경제 활동에서 배제되면서 쪼들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신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 2:9) 주님은 물질적 보상을 통해 그들을 위로하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진짜 현실을 바라보게 하신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형편으로 그렇지 않을지라도 영적으로는 부자라는 것을 깨우치신다.

주님의 시선은 세상의 시선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세상은 어떻게 해서라도 있어 보이는 존재가 되라고 부추긴다. 보이지 않는 신앙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앙을 지키다 궁핍해지는 편이 낫다고 말씀하신다. 진정 영원한 가치는 예수님께만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눅 12:15)

두 번째로 서머나교회가 겪고 있던 환난은 ‘비방’이었다. 서머나교회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중상모략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한 일을 벌이는 주체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서머나 성도들을 향한 비방은 단순한 인격 모독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형사 고발이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이 비방과 고발로 인해 감옥에 갇히는 서머나 성도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당시 서머나의 유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로마 제국의 안위를 위협한다고 당국에 거짓 고소함으로써 교회가 핍박을 받도록 만들었다.

예수님은 비방으로 지쳐 있는 성도들을 향해 이러한 일을 벌이는 이들이 사실 ‘사탄의 회당’임을 들춰 보여주신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나쁜 놈들이란 의미가 아니다. 지금 서머나교회가 당하고 있는 비방과 고발이라는 환난은 육의 싸움이 아니고 영적인 전쟁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교회와 성도는 이 땅에서 당하는 일들을 정확히 바라봐야 한다. 인간적인 생각만으로 세상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우리는 억울한 일들을 만나면 인간적인 혈기를 가지고 싸우려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싸울 대상은 혈육이 아니라 영적인 세력이다. 전선을 제대로 분간해야 한다.

계속해서 주님은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신다.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계 2:10) 다시 말해 그들이 앞으로 더 감당해야 할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실망스럽게 들릴 수 있다. 지금 당장 고난을 거둬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인 분이시다. 그분께 역사의 시작과 끝이 달려 있다. 심지어 마귀의 시험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 왜 그러한 시험과 환난을 허락하시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보잘것없는 참새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마 10:29)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담대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진짜 현실이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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