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푸틴 방북 환영"→"역내 안정 기여를"…韓 만나고 입장 바꿨다

박현주 2024. 6. 19.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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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에서 열린 한·중 외교안보대화에 참석한 중국 측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해 "러·북 간 교류가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그 간 북·러 밀착에 대해 "양자 간의 일", "관계 발전은 환영한다"며 거리를 두던 중국이 처음으로 사실상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중 외교안보대화' 이후 양국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이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만찬을 위해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외교부


19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한·중 외교안보대화에 참여한 쑨웨이둥(孫衛東) 외교부 부부장, 장바오췬(張保群) 중앙군사위 국제군사협력판공실 부주임 등 중국 측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러·북 간 교류가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외교안보대화 중에도 같은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번 대화에 한국에선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1차관과 이승범 국방부 국제정책관이 참석했다.

중국 측은 그간 북·러의 불법 거래와 밀착에 대해 수차례 입장을 질의 받았지만, '역내 평화·안정 기여'를 희망한다고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13일 푸틴 대통령의 방북설과 관련해 "양자 교류의 일로 논평하기 적절하지 않다. 원칙적으로 중국은 러시아와 관련 국가(북한)가 전통적 우호 관계를 공고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환영한다"(린젠 외교부 대변인 정례브리핑)고 밝혔다. 이어 18일에도 관련 질문을 받자 "앞서 답한 적 있다. 러·북 간의 양자 왕래"라며 답변을 갈음했다.

특히 이런 내용을 한국 측 발표 보도자료에 포함하는 것에 중국도 동의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더 눈길을 끈다. 통상 외교 회담의 결과는 각기 자국이 강조하려는 부분에 방점을 두고 자유롭게 작성하지만, 상대방의 발언을 전하는 것은 적어도 상대방이 반대하지 않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한·중 외교안보대화'에서 양측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제1차관(오른쪽)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실제 한국 외교부의 보도자료는 당일 자정을 넘긴 이튿날 0시 20분쯤에야 배포됐는데, 북·러 교류와 관련한 중국 측의 전향적인 새 입장 표명을 담기 위해 관련 협의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배포된 자료의 3분의 1 이상 분량이 북·러 문제로 채워졌는데 그만큼 한국 측이 중국 측에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는 걸 시사한다.

이런 중국 측의 입장 변화는 북·중 관계에 대한 불편함이나 북·러 간 지나친 밀착을 경계하는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는 북·러 밀착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수용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외교부는 줄곧 "러·북 간 교류·협력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란 입장을 견지해왔는데, 이날 중국이 밝힌 입장 또한 이와 일치한다.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언급하고, 중국이 '역내 평화와 안정'으로 입장을 밝힌 건 북·러 관계의 변화가 중국에 미칠 부정적 영향까지 의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한중 외교안보대화'가 열리는 모습. 연합뉴스.


이와 관련, 한국 측은 북·러 불법 밀착은 자칫 중국도 후폭풍 수습에 나서야 할 대형 이슈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며 설득했다. "러·북 간 군사협력 강화에 따른 한반도 긴장 조성은 중국의 이익에도 반하는 만큼 중국 측이 한반도 평화·안정과 비핵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또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대화에서 한국 측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오물 풍선 살포,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일련의 도발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지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러·북간 불법적 군사협력의 강화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변함이 없다"며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이날 한·중 외교안보대화는 개최 '타이밍' 자체로도 주목을 받았다. 푸틴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러 평양으로 향하는 날 중국 측 고위 인사가 서울을 찾아 회담을 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이 자체로 김정은이 원하는 북·중·러 연대의 그림을 흩트리는 효과를 지닌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국 측은 굳이 일정 조정에 나서지 않았다.

1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중 외교안보대화. 왼쪽부터 장바오췬 중국 중앙 군사위 국제군사협력판공실 부주임,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 김홍균 1차관, 이승범 국방부 국제정책관. 뉴스1.


한편 이날 대화에선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탈북민 강제북송 문제도 거론됐다. 외교부는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국내외 우려를 전달하고 탈북민이 강제북송되지 않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중국 정부의 각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날 외교안보대화는 외교부 차관급과 국방부 국장급 관료가 참석하는 ‘2+2’ 형식으로 열렸다. 대화는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오후 3시부터 4시간 가까이 진행됐으며 이후 서울 모처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겸해 협의가 이어졌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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