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쌍방울과 경기도의 무모한 대북 사업

전석운 2024. 6. 1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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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의 대권욕과 쌍방울의
투기 심리 결합된 사건 인상

이 대표, 경기도지사 시절
평화부지사 신설하고
남북교류협력기금 대폭 증액

방북 의지 강했던 이 대표
쌍방울의 800만 달러 대납
혼자만 몰랐을까

지자체 남북교류협력기금
운용 실태, 철저히 감사해야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은 북한을 상대로 이권을 얻어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1년 8개월만에 겨우 1심 선고가 났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권욕과 쌍방울이라는 기업의 투기 심리가 결합돼 벌어진 일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남북협력사업과 평양 방문을 추진하면서 대권 주자의 입지를 다지려 했고, 쌍방울은 대북 사업을 통해 신흥재벌로 발돋움하려는 야망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쌍방울은 경기도가 스마트팜 지원 비용으로 약속한 500만 달러와 이 대표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를 각각 대납한 뒤 북한으로부터 2300억 달러 어치의 희토류 채굴권을 얻었다. 우리 돈 300조원이 넘는 이권이다. 그러나 쌍방울이 800만 달러를 북한에 건넨 지 5년이 지나도록 이 대표의 방북도, 쌍방울의 대북 사업도 실현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2018년 7월 경기도지사에 취임하면서 대북사업을 전담할 평화부지사를 신설하고 그 자리에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의 일원이었고 자신의 캠프 비서실장을 맡은 이화영 전 의원을 앉혔다. 광역단체장 중에 평화부지사라는 직제를 만든 건 이 지사가 처음이었다. 이 지사는 경기도의 남북교류협력기금도 126억원에서 346억원으로 2.5배 이상 늘렸다. 이화영 부지사는 북한을 두 차례 다녀온 뒤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아태위)와 국제대회 공동개최, 스마트팜 지원, 평양냉면 옥류관 유치 등 6개 항목의 협력사업에 합의하면서 이 지사의 방북 추진을 공식화했다. 북한 통일전선부 외곽조직인 조선아태위의 리종력 부위원장은 같은 해 11월 경기도가 주최한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 국제대회’에 참석하면서 이 지사를 평양으로 초청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지사는 “육로로 가겠다”고 대답했고, 리 부위원장은 “육로로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라고 말을 흐렸다.

북한은 이 대표의 방북 비용을 요구했다. 북한은 이 지사가 항공편으로 방북하면 ‘최신형 헬기로 백두산을 가고,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때보다 더 크게 행사를 치르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현금을 주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이 부지사가 우회로로 고안한 것이 쌍방울의 대납이었다. 쌍방울은 은밀히 돈을 건네기 위해 외화 밀반출과 환치기 수법을 동원했다.

이 대표는 돈이 오고 간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한 수원지법 1심 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스마트팜 비용 대납을 이재명 지사에게 보고했다’는 대답을 이 전 부지사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이 대표를 이 전 부지사의 공범으로 추가 기소했으니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몰랐다는 이 대표의 주장은 상식에 반한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수행단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포함된 반면 당시 이 지사가 빠진 이후 경기도는 집요하게 이 지사의 단독 방북을 북측에 요청했다는 게 법정에서 밝혀졌다. 이 지사의 방북 의지를 잘 아는 부지사가 쌍방울의 대납을 지사에게 숨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쌍방울은 800만 달러를 송금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은 2019년 5월 12일 중국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희토류 등 지하자원 개발과 관광지 및 도시개발 등이 망라된 대규모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북한은 채굴가치를 2300억 달러 이상으로 정했는데 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쌍방울은 프로젝트 대가로 북한에 1억 달러를 주기로 합의했다. 한화 1380억원이 넘는 거액이다. 남북 합작 정경 유착이 만들어질 뻔 했다.

지자체의 독자적인 대북 사업은 절제돼야 한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나서다 보면 경기도처럼 대북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불법을 저지르기 쉽다. 정부와 엇박자를 보이면서 남북관계를 그르칠 수도 있다. 감시 사각지대에 있는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도 점검해야 한다. 쌍방울의 대북송금에 관여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은 북한에 밀가루 등을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경기도로부터 15억원을 지원받아 이중 7억6000만원을 횡령했다는 수원지법의 판결이 있었다. 이런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감사원은 지자체의 남북교류협력기금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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