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조물주 위에 건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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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1순위로 건물주가 꼽히는 현상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건물주들의 인생이 편하기만 할까? 되돌아보면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그리고 법원에서 조정위원을 하면서 만났던 건물주들이 마냥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조물주 위에 계시는 건물주 체면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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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1순위로 건물주가 꼽히는 현상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 일을 하지 않고도 월세로 먹고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건물주들의 인생이 편하기만 할까? 되돌아보면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그리고 법원에서 조정위원을 하면서 만났던 건물주들이 마냥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송 중에 만난 건물주들은 건물 관리가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하곤 했다. 월세를 받아도 건물을 사느라 빌린 대출금 이자며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나도 건물주가 되어보자’고 덜컥 빚을 내서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분들이 난감하다. 대출 금리가 올라 매달 이자를 갚느라 허리가 휘어지는데 건물을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건물이나 땅 관련한 분쟁이 있으면 서로 건물이나 땅을 갖겠다고 난리였는데, 요즘은 서로 상대방더러 가지라고 난리다. 이럴 때마다 법원 조정도 부동산 경기를 타는 것 같다고 농담처럼 얘기하곤 한다.
얼마 전에는 상가를 공동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들 사이에 소송이 붙어 조정을 하게 되었다. 건물주 중 한 명이 주차관리를 전담하고 있는데 혼자 마음대로 무료 주차권을 발급하고 주차비 수익은 나누지 않는다며 다른 건물주 쪽에서 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그동안 주차관리를 전담해 온 건물주 쪽 입장이다. “주차관리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상가 앞에 학교도 있고 유치원도 있어서 아이들 픽업하는 엄마들이 마음대로 주차를 하질 않나, 주차장 안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질 않나, 심지어 밤에 몰래 똥을 싸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니까요. 그거 치우느라…. 아유, 말도 마십시오.”
주차장에 싸놓은 똥까지 치웠다는 대목에서 갑자기 실소가 나왔다. 조물주 위에 계시는 건물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번에는 반대편 건물주 쪽 입장이다. “무료 주차권 준다면서 뒷돈을 받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참에 주차관리 업체에 맡겨서 공정하게 수익을 나누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주차관리 업체를 선정하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본인이 계속 관리하겠다는 상대방. 이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여인들에게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고 한 솔로몬왕의 해법을 슬쩍 커닝해 보기로 했다.
“그럼 주차장을 나눠서 관리하면 어떠시겠어요? 그러면 주차관리 업체를 쓰고 싶은 분은 쓰고, 직접 관리하고 싶은 분은 직접 관리하시면 되지요.”
직접 주차관리를 하는 건물주 쪽은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주차관리 업체를 쓰자는 건물주 쪽이 흠칫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주차장을 진정 내 아이처럼 아껴서 반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막상 주차관리를 하려니까 골치가 아파진 것인지 모를 일이다. 결국 주차관리는 원래 하던 쪽에서 하고 무료 주차권만 공정하게 나눠서 쓰는 것으로 하자는 데 합의가 되려는 찰나, 이런 합의사항을 언제부터 이행할 것인지를 두고 다시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아이고, 사장님들. 한 달 후부터 시작하나 지금부터 시작하나 한 달 주차비로 치면 월 10만원인데…. 결혼 축의금을 하더라도 그 돈은 나가지 않습니까. 서로 좋게 부조하셨다고 생각하시지요.” 적당한 선에서 서로 합의하라고 조정안을 보내드리기로 했다. 하지만 조정안은 조정안일 뿐, 누구라도 불복하면 계속 재판을 해야 한다. 조물주든, 건물주든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옛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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