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푸틴, 24년 만에 북·러 관계 격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평양을 찾아 19일 북·러 정상회담을 한다. 정상 외교의 형식 중 가장 높은 국빈 방문으로,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한 이후 7개월 만이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18일 북한과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 협정 체결을 지시했다. 러시아 법률 웹사이트에 발표된 대통령령 문건에 따르면 “러시아와 북한의 포괄적 동반자관계 협정을 체결하자는 러시아 외무부의 제안을 수락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일까지로 예정된 방북 기간 중 이 협정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보좌관도 지난 17일(현지시간) “이 협정이 서명되면 이는 기존에 체결된 기본 문서들을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0년 푸틴 대통령의 첫 방문 당시 맺은 ‘조·러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현재 한국과는 한 단계 낮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맺고 있다.
이 조약 2조에는 상호 안전보장과 관련, “쌍방 중 한 곳에 침략당할 위기가 발생할 경우 또는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리고 협의와 협력이 불가피할 경우 쌍방은 즉각 접촉한다”고만 규정돼 있다. 북한은 1961년 7월 맺었다가 소련 해체 이후인 1996년 공식 폐기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 조약’ 수준의 유사시 군사적 자동 개입 조항의 부활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새 협약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도착에 앞서 노동신문 1면에 기고문을 실었다. 2019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방북 직전 노동신문에 기고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연대를 이어가는 친선과 협조의 전통’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상호 결제 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핵·미사일 개발로 각각 국제사회의 금융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북한이 미국 중심의 국제 금융시스템과 달러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체 무역·결제 시스템을 갖추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미국 주도의 무역질서를 무시하는 공간을 만들고, 이를 블록화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푸틴, 김정은 ‘동지’라 부르며 혈맹 강조
그는 또 “조선(북한)의 벗들은 수십 년간 계속되는 미국의 경제적 압력과 도발, 공갈과 군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매우 효과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고수해 나가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어제도, 내일도 조선 인민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타바리시치(tovarisch, 공산당 동지)”라고 부르며 북한과의 역사적 관계를 상세히 거론하기도 했다. “소련은 세계 최초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했으며, 1950~53년 6·25전쟁에서 조선 인민의 투쟁을 지지했다”면서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을 동지라 부르며 과거의 혈맹 관계를 강조한 건 러시아가 양국 관계를 이 수준까지 끌어 올리고 싶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노동신문은 이 날짜 사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의 뿌리 깊은 친선과 협조 관계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양국의 선린 우호관계를 새로운 높은 관계로 발전시키는 데서 큰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19일에 방북 주요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우샤코프 크렘린궁 보좌관에 따르면 공식 환영식, 확대 및 비공식 정상회담, 문서 서명식 및 언론 발표를 할 예정이다. 그는 “두 정상이 산책과 다도를 겸한 일대일 비공식 회담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에는 북·러 간 군사협력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평양 시내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순안공항 건물 외벽에는 ‘조로 친선은 영원하리라’ 등의 환영 배너가 내걸렸고, 도로 옆에는 러시아 국기와 푸틴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베트남으로 떠난다.
정영교·이유정·박현주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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