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내 기분이 뭣이 중헌디

이마루 2024. 6. 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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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의 기분과 판단은 소비를 동반할까?
©unsplash

집 근처에 제법 알려진 로스터리 카페가 있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문을 열기도 해서 휴일 오전이면 종종 노트북을 들고 찾는 이곳은 몇 달 전부터 배달 앱 서비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나는 놀랐다. 정말 수많은 사람이 아침부터 음료를(그것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배달해 마신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픽업 카운터에 가득 놓인 음료와 계속 드나드는 라이더들. 서울 같은 도시에 집 근처 카페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여기 커피가 몇천 원의 배달비를 추가로 낼 정도인가? 카페는 텅텅인데 배달 주문이 밀려 커피가 나오려면 15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던 어린이날 오전 10시 10분. 나는 상상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바로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주문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의 닮아 있는 휴일 풍경을. 남들이 휴일 아침에 커피를 주문해 마시는 것까지 지켜보며 한바탕 호들갑을 떤 이유는 최근 ‘지금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내 기분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이 기분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돌아보게 됐기 때문이다.

많은 잡지가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4월호를 ‘그린 이슈’와 ‘환경 특집’으로 채운다. 그러나 지난봄의 나는 다소 비뚤었다. 제노사이드에 가까운 분쟁,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 같은 인재들을 보며 ‘하! 환경보호가 뭐가 중헌디!’라는 냉소가 솟구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봄에도 취재는 해야 했고, 지구와 생명에 대해 남다른 감수성을 갖고 살아가는 1990년대~2000년대생들을 만났다. 그중 직업군인이었다가 제대 후 환경단체 ‘녹색연합’ 활동가로 거듭난 진예원 씨의 만남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군인시절 복무지였던 강원도의 산과 바다를 보며 환경오염과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과 직면한 당사자가 전하는 언어는 남다른 울림이 있었고, 활동가로서 가장 힘을 얻는 것이 시민들의 관심이라는 경험담(실제로 녹색연합의 회원 수는 증가 추세다)은 내게도 냉소하지 말라는 독려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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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니 내가 만들지 않아도 되는 쓰레기를 탄생시키는 상황 중에서 상당수가 순간의 ‘기분’이라는 사실이 다가왔다. ‘기분(氣分)’의 뜻을 풀이하면 ‘대상이나 환경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이다. 충족되어야 하는 필요에 의한 욕구도, 내 삶을 돌보기 위해 세밀하게 살펴야 하는 정서적 문제도 아닌데 우리는 ‘기분’에 따라 많은 걸 결정한다. 왜 꼭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음료를 테이크아웃해야 할까? 잠깐 참았다가 사무실에 둔 컵을 갖고 내려가면 1회용품 쓰레기를 안 만들어도 되는데. 식사하고 후식으로 음료를 마시는 ‘기분’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때로는 ‘사준다는데 안 먹으면 손해니까 먹자’는 이상한 계산으로 기어코 1회용 잔을 손에 쥔다. 텀블러보다 빨대로 ‘쪽쪽’ 빨아먹는 음료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렇다고 순간의 기분에 충실한 이 자잘한 선택이 우리를 계속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하루 열심히 일한 나에 대한 보상으로, ‘이 메뉴’가 먹고 싶다는 기분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했다가 잔반과 1회용품을 처리하며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수많은 경험담은 영원히 반복된다. 충동구매한 물건을 반품하는 과정은 번거롭고, 때로는 죄책감과 자책까지 수반한다. 그리고 사실 이 작은 결정과 번복 중 상당 부분이 소비와 결제 과정을 동반한다는 것까지 깨닫고 나면 ‘내 기분이 진짜이긴 한지’ 근원적인 의심마저 드는 것이다.

일요일인 오늘도 어김없이 앞서 말한 카페에 들러 원고를 쓰고 있다.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섰다가 오후 2시를 기점으로 어김없이 배달 픽업 카운터에 쌓이는 수많은 음료와 디저트를 보며 또 한 번 상상한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후식을 찾아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열었을 수많은 사람의 모습. 이 음료를 받아들 사람들의 기분은 ‘주문하기’를 눌렀을 때의 마음과 같을까? 이렇게 얼음이 녹은 ‘아아’를 먹고 싶은 게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나, 역시 라테를 주문할 걸 그랬다고 후회할지도. 물건이든, 콘텐츠든 모든 것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이 당연한 현대사회에서 소비자의 정체성 말고 내 기분을 한 번 더 거슬러 우선시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지 조용히 버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커피 먹는 것 보면서 진짜 유난이네’ 싶긴 하지만, 이것도 뭐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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