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뉴타운 오후, 병원 3곳 중 1곳 문 닫았다…환자들 "화난다"

채혜선, 장서윤, 박종서 2024. 6. 1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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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은평구 진관동 일대를 돌아봤더니 휴진한 의원들. 장서윤·박종서 기자

“아이 뭐야, 왜 문을 닫았어…”

18일 오후 2시 40분쯤 의원 6곳이 몰려 있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 한 건물 3층 이비인후과. 32도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흰색 마스크를 쓴 채 콜록대던 한 20대 남성은 병원 출입문 앞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안내문에는 “개인 사정으로 오후 1시까지 진료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뉴타운 진관동 전수조사…종일 휴진은 15%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집단 휴진에 들어간 이날 중앙일보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은평뉴타운)에 있는 의원급 전체 의료기관 32곳의 휴무 여부를 점검했다. 진관동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4만 명에 이르는 구파발역 역세권에 속해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다. 뉴타운 특성상 노인 60대 이상 인구도 1만2980명으로 전체 5만3932명 가운데 24%에 달한다. 종합병원인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이 자리해있고, 치과·한의원을 포함한 의원과 약국이 총 92곳(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준)에 달해 의료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차준홍 기자

심평원 ‘건강지도’에 따르면 진관동에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치과·한의원 제외) 32곳은 복합쇼핑몰이나 아파트 인근 상가에 여러 개씩 몰려있었다. 중앙일보가 32곳을 직접 방문해봤더니 이날 전면 휴진에 나선 의원은 5곳(15%)으로 파악됐다. ‘휴진. 내부 사정으로 쉽니다 -○○안과-’ ‘6/18일 학회 일정으로 휴진입니다.’ ‘6/18(화) 개인 사정으로 휴진합니다’ ‘6/18일 학회일정으로 휴진입니다’처럼 휴진한 의원 대부분은 개인 사정을 휴진 사유로 내걸었다. 휴진에 나선 한 은평구 의사는 “누군가는 집회 현장에서, 누군가는 진료 현장에서 같은 마음일 것이기 때문에 (의협) 집회 참여율은 100%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8일 한 신경과에 붙은 안내문. 채혜선 기자

“금일 직원 휴무(병가)로 예약 진료만 진행합니다. 당일 접수 진료가 불가합니다.”

두통·어지러움·치매 등을 진료하는 한 신경과 의원은 이런 안내문을 이날 오후에 붙여뒀다. 의원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인근 약국 직원은 “오전엔 분명 진료한 병원인데 갑자기 문을 닫으면 환자는 어쩌나”라며 당황해했다.

이날 진관동 일대에선 오전에는 진료했지만 오후엔 문을 닫은 병원이 적지 않았다. 의협이 이날 개최한 총궐기대회가 오후 2시라 오전 진료만 하고 오후에는 휴진에 참여하는 것이다. 내과·산부인과·정형외과·피부과 등 의원 6곳이 몰려있는 한 대형건물 같은 경우 의원 4곳이 오후엔 불이 모두 꺼져있었다. 진관동 의원 중 하루 종일 휴진에 나선 곳(5곳)과 오후 휴진(5곳)을 합치면 전체 32곳 중10곳(30%)이 휴진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이런 식의 휴진을 ‘꼼수 휴진’이라고 보고 있다. 오후 휴진에 들어간 의원은 5곳이었는데, ‘직원 병가’ 외에도 ‘개인 사정’을 휴진 사유로 설명했다. ‘금일 원장 개인 사정으로 휴진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원장님 개인 사정으로 단축 진료합니다. -○○ 피부과-’ ‘개인 사정으로 오후 1시까지만 진료합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은평구 한 내과 원장 3명 중 2명이 오후 1시까지 진료했다. 장서윤 기자


영문을 모르고 병원에 왔던 환자들은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피부과를 찾은 주부 조모(38)씨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분명 진료 중이었는데 와보니까 문을 닫았다. 이렇게 발길을 돌린 것만 오늘 두 차례”라며 “처음엔 이해했는데 두 번째 병원도 이러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사전 휴진 신고율이 4%에 그쳤던 만큼 진료 시간을 단축하거나 신고 없이 휴진한 병원이 있어 지역 주민이 느끼는 불편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 김창수(56)씨는 “어르신들은 매번 인터넷을 검색하며 병원에 오는 게 아니지 않나. 검색하고 병원에 갔다가 문이 닫혀 있으면 낭패”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사태 장기화를 우려했다. 은평뉴타운1단지에 산다는 주부 김모(36)씨는 “아이들은 갑자기 아플 때가 많은데 걱정된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황모(65)씨도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병원을 한 달에 한 번씩 가는데 약이 떨어진 상황에서 병원이 닫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의협은 이날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날 은평구 맘 카페에선 휴진하는 동네 소아청소년과 리스트가 돌기도 했다. 한 글쓴이는 “오전엔 진료하던 병원이 오후엔 다 휴진이고 특정 동은 전멸이다. 이 정도면 담합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채혜선·장서윤·박종서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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