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터뷰] 홍철 ② "대표팀 한 번 더? 클린스만 감독님 때 안 뽑혀 서운하긴 했죠"
[풋볼리스트=대구] 조효종 기자= '국가대표 풀백'은 선수 홍철의 대표적인 수식어 중 하나다. 스무 살을 지난 지 얼마 안 된 2011년 A매치에 데뷔해 47경기에 출전했다. 큰 무대도 누볐다. 월드컵에 두 차례 출전했고 아시안컵도 경험했다. 2022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선 주장 완장을 차고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K리그1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2010년 K리그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줄곧 K리그1 무대만 누비며 통산 369경기 14골 50도움(6월 18일 기준)을 기록했다. K리그1 최다 출전 전체 13위, 최다 도움 10위다. 상위에 은퇴 선수들이 많은 만큼, 향후 각각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순위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충분하다.
지난달 대구FC 클럽하우스에서 홍철과 만났다. 선수 홍철의 현재, 주장 그리고 아빠로서의 이야기(①편)를 나눈 데 이어 홍철의 과거부터 미래를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홍철은 부침이 많은 팀 사정에 대체로 담담한 태도로 인터뷰에 임하면서도 특유의 재치와 '악플러' 기질을 잃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Q 지난 4월, K리그1 50번째 도움을 기록하면서 통산 도움 순위 10위로 올라섰습니다. 4위인 에닝요와 6개 차이니까 최상위권 진입도 가시권이에요.
A 아직 K리그2 기록이 없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어요. K리그1에서 이렇게 많은 경기를 뛰고, 또 이렇게 많은 도움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건 솔직히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지도자분들도 잘 만났고, 또 좋은 팀에만 있었던 덕분이에요. 젊은 선수들이 건방 떠는 게 보이면 '야, 내 기록부터 넘고 그렇게 행동해라'라고 해요. 그러면 세징야 말고는 아무도 못 하죠(웃음). 도움을 더 많이 기록하고 싶어요. 저는 골보다 도움을 기록할 때 기분이 짜릿하고 좋더라고요. 6개, 10개, 더 많이 해서 최대한 높은 순위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Q 최근 경기에 나서고 있는 대구 젊은 공격수 중 '내 기록에 도전해 볼 만하다' 싶은 선수가 있을까요?
A 지금 (박)용희가 공격포인트가 많으니까, 용희가 꾸준하게 10년 이상 뛰면 저를 넘어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크로스나 킥을 보면 아직은 절 넘을 수 없죠(웃음). 저는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그래서 어린 선수들한테 장난치면서도 매번 이야기해요. 킥이랑 슈팅이 좋아질 수 있도록 허벅지 안쪽 운동도 많이 하라고요.
Q 50도움 외에도 영광스러운 기록이 많아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고,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두 차례 출전했어요. K리그1 베스트일레븐에도 4번 뽑혔고요. 가장 자랑스러운 경력은 무엇인가요?
A 50도움이 가장 자랑스러워요. 팀을 승리로 이끈 도움도 있었고, 누군가 빛나게 할 수 있는 도움도 있었잖아요. ACL 2회 우승, 월드컵 2회 출전 같은 건 제가 어느 정도 참여한 것뿐이고 결국 주위 사람들이 잘해서 이뤄낸 거라 생각해요.
Q 2011년 A매치에 데뷔해서 47경기를 뛰었어요. 대표팀 유니폼을 다시 한번 입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요?
A 이 질문을 가끔 받는데, 늘 이렇게 답변하는 것 같아요. 선수라면 누구나 대표팀 옷을 입고 경기에 출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 그런데 지금 제 나이가 예전 한국 나이로 35세에요. 지금 대표팀에는 저보다 젊은 선수, 2년 후 월드컵에서 충분히 잘 뛸 수 있는 선수가 가는 게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맞지 않을까요? 불러주시면 늘 영광이지만, 제 입장에서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휴식이 필요하기도 해요. 리그를 치르다 보면 부상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아이가 한창 클 때라서 며칠 못 보면 금방 달라져 있어요(웃음). 그게 아쉽기도 하고요. 누가 들으면 너무 욕심이 없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제 마음은 이렇습니다.
Q 얼마 전에 울산HD에서 함께했던 김도훈 감독이 대표팀 임시 감독을 맡았잖아요. 인연이 있었으니까 혹시나 하진 않았나요?
A 기사를 보고 '아, 이거 다시 준비해야 하나?' 싶었죠(웃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뽑힌다면 당연히 가고 싶은 자리고, 몸 신경 쓰지 않고 100%로 할 거예요.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니까요.
Q 카타르 월드컵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대표팀 승선 기회가 갑자기 뚝 끊겼어요. 지난 시즌 하반기 K리그1 9경기 4도움을 기록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을 때는 한 번쯤 부름을 받았을 법한데, 끝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 당시는 당장 눈앞에 닥친 아시안컵을 준비하던 때라 팀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영되던 시기도 아니었는데도요.
A 사실 많이 서운했어요. 속상하기도 했고요. 작년 시즌 마지막쯤에는 부상도 없었고, 도움도 많이 하면서 잘하고 있었으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팀이 어린 선수들 위주였다면 화가 날 일이 없었겠지만, 제 또래 선수들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나는 왜 안 뽑히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결국 제가 부족해서였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대표팀이 또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는 시기입니다. 대표팀 생활을 오래 했는데, 우리 대표팀엔 어떤 스타일의 감독이 어울릴까요?
A 제가 판단을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파울루) 벤투 감독님의 스타일이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똥고집'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분명한 자기 철학이 있으셨잖아요. 월드컵 나가서 세계적인 팀과 맞붙을 때도 본인이 하고 싶은 축구, 우리 철학을 갖고 그대로 경기하는 게 좋았어요. 그런 감독님이 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
Q 다시 홍철 선수 이야기로 돌아오죠. 앞서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꼽아봤는데, 의외로 아직 이루지 못한 것도 있어요. 우선 다른 대회와 달리 유독 리그 우승과 연이 없었어요.
A ACL 2번, FA컵에선 3번 우승했는데 리그에선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준우승만 4번 했고요. (4번째 준우승을 했을 때는 기분이 어땠나요?) '나 때문에 우승을 못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리그 우승을 꼭 해보고 싶은데, 은퇴하기 전에 한 번쯤 우승할 날이 오겠죠. 대구에서 꼭 해보고 싶습니다.
Q 또 K리그1에서 꾸준히 기록을 쌓아 올린 대신 해외 진출 경험은 없었어요.
A 어릴 때부터 (해외에) 나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어요. 제가 부족해서 그랬겠죠. 아쉽긴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요.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K리그에서 매년 좋은 경험을 했잖아요. 부족한 시즌도 있었지만 좋은 시즌이 더 많았어요. 제 축구 인생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팬분들께 '그래도 K리그에서 꾸준히 뛴 선수'로 기억되면 굉장히 감사할 것 같아요.
Q 선수 홍철의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함께 떠오르는 선수들이 몇 명 있어요. 오랜 기간 대표팀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김진수, 월드컵에서 명장면을 만들어준 독일의 레온 고레츠카, 대구에서 가장 많이 엮이는 오승훈까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선수들인가요?
A 일단 제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리게 해준 선수가 고레츠카였던 것 같아요.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과 경기했을 때 만났는데, 그 선수가 절 몰라서 당당히 치고 나갔고 제가 따라잡은 장면이 있었죠. 진수는 라이벌이라기보다 대표팀에 함께 간 적이 가장 많은 선수죠. 진수 덕분에 제가 대표팀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대표팀과 가까운 선수가 아니었어요. 연령별 대표팀 때는 동갑내기인 (윤)석영이가 항상 제 위에 있었어요. 저는 늘 누군가를 따라잡아야 하는 위치였죠. 그 선수들을 앞지르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프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대표팀에서 진수를 보고 배우는 것도 많았어요. 동생이지만, 저보다 커리어가 좋고 해외 생활도 했잖아요. 제가 경기에 나설 때는 옆에서 좋은 말도 많이 해줬어요. 고마운 점이 많아요.
Q 오승훈 선수 이야기를 빼놓으면 섭섭할 것 같아요. 최근 '케미'가 가장 좋은 선수잖아요. 장난삼아 '악플'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서로를 가장 많이 챙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13라운드 FC서울전 당시, 팀이 승리하자 오승훈 선수를 향해 감격을 표현하기도 했잖아요.
A 제가 힘들 때 항상 승훈이 형에게 의지해요. 최근에는 승훈이 형에게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저도 도움을 많이 주고 싶은데, 제가 후배라서 먼저 다가가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서울 원정 경기 때 저도 경기장에 갔거든요. 오랜만에 승리를 거두고 골대 안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봤을 때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이제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에 축하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저보다 고참이 그라운드에 같이 있으면 저도 의지가 되거든요. 앞으로도 제 뒤에서 골을 잘 막아줬으면 좋겠습니다.
Q 어느덧 리그 전체에 의지할 수 있는 고참이 몇 명 없는 시기가 됐습니다. 지난 시즌 끝나고는 같은 팀에 있던 이근호 선수가 은퇴하기도 했고요. 아직 이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언제 어떻게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면 좋을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A 아직 계획을 세운 건 없어요. 저보다 4살 많은 이용 형(수원FC)도 경기를 많이 뛰고 있잖아요. 우리 팀에 있는 (이)용래 형, 포항스틸러스에 있는 (신)광훈이 형, FC서울에 있는 (기)성용이 형도 그렇고, 여전히 형들이 많은 경기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은퇴에 대한 생각을 하진 않아요. 다만 스스로 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축구화를 벗어야 할 것 같아요. 억지로 끌고 가면 계약 중인 팀에 도움이 안 되는 거잖아요. 딱 그때가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은퇴할 때까지도 1부 리그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팬분들 앞에서 은퇴식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근호 형이 정말 멋있게 떠났잖아요. 저도 근호 형처럼 박수받으면서 은퇴하고 싶습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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