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못한 기자들이 20일 만에 받은, 노골적인 선물 [까칠한 언론비평]
언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에는 많은 흠집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렌즈를 통과하는 사실들은 굴절되거나 아예 반사돼 통과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비틀어 왜곡하거나 감춘 사실들을 찾아내 까칠하게 따져봅니다. <편집자말>
[신상호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김치찌개를 배식하고 있다. 냄비 앞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김치찌개 레시피'가 적혀 있는 팻말이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지난달 24일 김치찌개 파티 이후 불과 20여 일만의 일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회식이 끝날 무렵, 기자들에게 "언론인 연수를 대폭 늘리겠다"라고 말했고 김건희 특검 등 현안에 대해 질문 하나 제대로 못하고 음식만 받아먹던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은 물개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날 회식에서 나왔던 유일한 기삿거리였던 해외연수 확대가 속전속결로 확정된 셈이다.
언론재단의 언론인 해외 연수는 '폐지'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말이 많았던 사업이다. 장기해외연수 대상자는 보통 1년 정도 회사를 쉬면서 연수를 가야 한다. 반대로 보면 기자에게 1년 정도 휴직을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언론사에 소속돼야만 지원이 가능하다.
장기간 휴직이 불가능한 대다수 언론인들에겐 '그림의 떡'과 같은 것이 언론인 해외연수 지원이란 이야기다. 실제 지난 2021년부터 2024년 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자 선정 현황을 보면, <한국경제> 3명, <조선일보> 2명, <중앙일보> 2명, <서울신문> 2명, <연합뉴스>(연합뉴스TV 포함) 2명을 비롯해, <동아일보>와 <매일경제>, KBS, JTBC, YTN, MBC, CBS, <이데일리>가 각각 1명씩으로 일부 중·대형 언론사다.
해외연수 지원에 투입되는 재단 예산은 적지 않다. 해외연수 대상자들에게는 최대 4250만 원이 지원된다. 올해 해외연수 대상자 10명에게 4억 2500만 원(최대한도 지원시)이 투입되는 것인데, 재단이 올해 취재 역량 강화를 위해 편성한 예산(23억 원)의 20%에 달하는 규모다.
그들만의 리그인 '언론인 해외 연수'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는 반면, 소수 언론사 소속 기자들만 대상자가 된다는 문제가 지속되면서, '폐지' 여부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수 년 전 재단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해외연수를 없애고 지역 언론 등 역량 강화가 필요한 언론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모색하자는 논의가 이뤄졌지만,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했던 언론인 해외연수 제도가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인 당근책'으로 활용되면서 규모가 더 커진 셈이다. 재단이 확정한 언론인 연수 대상자 160명은, 언론인 해외연수사업이 시작된 이래 역대 최대 규모다. 언론재단 측은 대통령과 출입기자 회식 이후 연수 대상자가 대폭 확대된 것이란 지적에 적극 반박하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준비 과정을 거쳤다는 입장이다.
언론재단 관계자는 "(대통령과 회식 이후 급작스럽게 계획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그렇게 본다면, 그게 아니다라고 항변할 수는 없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해외연수 등의 과정을 확대하고자 하는 재단의 노력들은 분명히 있었다"고 했다. 이어 "(외부에서) 갑자기 확대되는 느낌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재단이 아주 갑작스럽게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흐름을 감안할 때 김치찌개 회식 당시 대통령 곁에서 질문 하나 없이 시간을 보냈던 중대형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 내년 언론재단 해외연수대상자 명단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저녁 초대'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다. 2024.5.24 |
ⓒ 연합뉴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언론을 "검찰의 애완견"이라고 표현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권력자에게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못하고, 김치찌개, 해외연수 등 온갖 당근만 받아먹으면서 공개적인 권언유착을 서슴지 않는 이들 언론인들을 보면, 이 대표의 말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렵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현장에서 '권력 감시'라는 공적 책임감을 갖고 취재하다가 때로는 고초를 겪는 극소수 언론인들마저도 싸잡아서 여론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당근에 목을 매는, 기자라고 칭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느껴야 할 부끄러움은 왜 항상, 모든 언론인들의 몫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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