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피 시대, 교회가 답을 찾다…크리스천 청년들의 로맨스 부활 프로젝트
최근 미디어에서 결혼의 이미지는 ‘결혼 지옥’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부정적이다. 서로 너무 달라서 괴로워하며 이혼을 고민하는 사연들이 자주 등장하고, 이혼 후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토로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을 접한 이들의 “나 같아도 결혼 안 하겠다”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17일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의 출생성비 불균형과 결혼 성비’에 따르면 만 39세인 1985년생 남성의 미혼율은 46.5%, 여성은 29.1%에 달한다. 불혹이 코앞인 남성 2명 중 1명이, 여성 3명 중 1명이 미혼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기독 유튜브 채널이 공개한 소개팅 영상이 크리스천 청년들의 연애 세포를 깨우고 있다. 채널 운영자인 이종찬 전도사가 자신이 속한 서울 강북구 벧엘선교교회 남자 청년과 이웃 교회 여자 청년의 만남을 주선해 영상으로 담았다. 영상 제목은 ‘뒷 교회 자매를 짝사랑한 형제에게 소개팅 시켜주기’. 두 교회 사이에 있는 카페에서 남녀가 첫 만남을 갖는다. 이 전도사와 서정모 우이중앙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는 인근에 주차한 차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두 남녀를 지켜본다. 유튜브에 올라온 본 영상보다 목회자들의 반응만을 담은 쇼츠 영상이 더 큰 화제가 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젊은 크리스천 남녀의 만남에 당사자보다 더 설레하는 목회자들의 반응이 결혼은커녕 연애도 꺼리는 청년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시청자들과 통한 것 같다는 게 이 전도사의 분석이다. “이 콘텐츠 고정으로 가자” “사실상 대부분의 교회 청년들이 원하던 콘텐츠” 등 댓글 반응도 비슷하다.
이 전도사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요즘 청년들 생활 안정이 어렵고 경쟁이 심해 내적 갈등도 크다”며 “결혼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단순히 결혼을 권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도사 본인의 소개팅을 비롯해 구독자 소개팅 등 크리스천 청년들의 만남 주선에 힘써온 종리스천TV는 향후 서울 강북구 지역교회 대상 청년 소개팅이나 단체 미팅 컨셉의 ‘기독교판 나는 SOLO’도 방영할 방침이다.
러브그로우레터 운영자 추진주씨는 “참가자들이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참가자들의 소개팅 신청 동기를 보면 ‘믿음의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출석 교회 내 연애에 부담을 느껴 지원한다’는 사유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세 차례 모집한 결과 소개팅에는 기독 청년 총 220명이 지원했다. 대전 청주 여수 등 다양한 지역에서 참가자들이 몰려왔고, 외국인 여성도 지원서를 냈다. 소개팅은 참가 남녀들이 한날한시 한곳에서 일대일로 번갈아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성 한 명당 10분간 대화하며, 취향이나 믿음을 나눌 만한 질문지에 답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소개팅 마지막 단계에서는 상대방에게 축복 쪽지를 쓰는 시간이 있다.
추씨는 “결혼정보회사는 가격대가 너무 높고 데이트 앱은 불건전한 만남이나 이단 포교 등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러브그로우레터를 구독하는 기독 청년들이 비슷한 관심사 안에서 불안감 없이 만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서울 강동구 오륜교회(주경훈 목사)의 ‘러브 인 갓’도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다. 2019년에 시작해 이달 5기 매칭을 마친 사역에는 연인원 250명이 참석했다. 러브 인 갓은 오륜교회 청년부 출신 집사들이 후배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해마다 30~40명가량의 오륜교회 청년이 참여하다가 지난해부터 외부 교회에도 소개팅 문을 열었다. 지원자에겐 교인증명서를 비롯해 목회자추천서 재직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받는다.
참가자들은 3주 동안 성경적 결혼관 등 강의를 함께 들은 뒤 4주간 1대1 미팅 시간을 갖는다. 첫 3주간 프로그램에 성실히 참여한 청년에게는 ‘축복권’과 ‘데이트권’이 주어진다. 축복권은 호감이 가는 이성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카드다. 데이트권은 10만원과 함께 이성에게 일일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는 카드로, 지목된 이성은 데이트를 거절할 수 없다.
참가 남녀들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7주간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색적이다. 이름 대신 브로콜리 민트초코 라이언 짱구 등의 별명을 사용한다. 매칭 전까지는 자차 이용도 금지된다.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주간의 모임이 끝나면 커플 매칭이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이성 3명에게 호감을 표시할 수 있고 한 달간의 데이트 시간을 갖는다. 최종 연인이 된 커플은 일종의 결혼 준비 학교인 ‘연지곤지스쿨’에 등록할 수 있다.
김정호 러브 인 갓 담당 간사는 “참가자들에게 물어보면 ‘남자는 돈이 있어야 결혼하고 여자는 예뻐야 결혼할 수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더라”며 “패배감에 젖은 청년들에게 용기와 인연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남편인 김 간사와 함께 사역 중인 이소희 담당 간사는 “우리 부부도 40대에 어렵게 결혼했다”며 “세상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게 사역 목표다. 청년들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하나님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육아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최근 출산한 셋째를 포함한 자녀들과의 일상과 신앙생활을 구독자 4만3000명에게 매일 전하고 있다. 둘째 아들이 3살 때 고사리손을 모으고 식전 기도한 영상은 1360만 회 재생되기도 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나 크리스천 가정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고 또 적지 않은 경우가 그렇다고 알고 있다”며 “저 역시 연약한 인간이기에 삶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연애와 결혼 기간 자신이 실천한 방법도 공유했다. 그는 “연애 시절 데이트의 시작과 끝은 항상 기도였다”며 “하나님 안에서 함께 성장하길 원하고 연약한 부분을 솔직하게 고백했다”고 소개했다. 결혼 후에는 대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부부는 각자 하루를 보낸 뒤 저녁에 만나 밥을 먹으며 2시간 이상씩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 목사는 “대화하면서 기독교 가치관에 맞는지 아닌지 성경을 함께 읽기도 했다”며 “부부의 대화가 작은 예배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교회문화연구소장인 이의용 전 국민대 교수는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조언했다. 결혼 전 예비부부가 함께 갈등 예상 문제들을 담은 체크리스트를 풀어보라는 주문이다. 체크리스트에는 ‘배우자의 이성 친구 교류를 어느 정도까지 양해할 것인가’ ‘아이는 몇을 낳을 것인가’ ‘결혼 후 해결해야 할 밝히지 않은 채무 관계가 있는가’ ‘결혼 후 부모와 함께 살 것인가, 독립할 것인가’ 등의 민감한 질문도 적지 않다.
이 교수는 “전쟁 나가기 전에 한 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가기 전에 두 번 기도하라, 결혼하기 전에 세 번 기도하라”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면서 “결혼생활에는 수많은 갈등 거리가 놓여있다. 예상 문제를 미리 풀어보면 갈등을 잘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33가지 체크리스트 가운데 다른 점이 너무 많으면 헤어지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며 “부부가 되려면 합의와 설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후에 부부와 자녀에게 더 큰 불행이 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손동준 신은정 이현성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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