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7명 작곡가만 연주"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선언한 이유
피아니스트 김선욱(36)은 “어제 피아노 연습을 8시간 하고 왔다”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다음 달 5일 시작하는 독주회를 위한 연습이다. “어제는 지휘 리허설이 없었거든요. 오랜만에 내 손으로 소리를 내니까 너무 좋았어요. 행복했어요.”
김선욱은 18세에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았던 피아니스트다. 어려서부터 지휘를 꿈꿨던 그는 2021년 KBS교향악단과 지휘자로 데뷔했다. 또 올 1월부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한국 청중과 주로 지휘자로 만났다. 이번 공연은 한국에서 열리는 2년 만의 피아노 독주회. “예전에는 1인칭으로 치던 피아노를 이제는 3인칭으로 연주한다”며 행복하다는 그를 지난달 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Q : 오랜만에 어떻게 연습했나요.
“그냥 쳐요. 피아노 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옛날에는 잘 쳐야지 하면서 이거 못하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처럼 생각했는데 이제 안 그래요. 딱 하나만 틀려도 자괴감이 들었는데 지금은 ‘조금 아쉽네’ 하는 정도?”
Q : 어떻게 그렇게 바뀐 것 같나요.
“피아노 악보 보는 시간의 몇 배를 들여 오케스트라 악보를 보니까요. 이제 확실히 달라요. 피아노 악보가 좀 심플해 보이기도 하고요.”
Q : 피아노가 쉬워진 건가요?
“피아노를 치면서 오케스트라 악기를 떠올리게 되거든요. 단순히 화음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여기는 플루트로, 여기는 드럼으로 보이니까요. 머리로 상상하는 소리가 손으로 나와요. 그러니까 좀 더 관조적이 되는 거죠. 이제는 멀리서 제가 치는 걸 바라보고 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껴져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간 거죠. 그게 되게 편해요. 음을 내는 그 자체가 너무 즐겁고요.”
Q : 지휘 스케줄이 워낙 많아서 피아노를 아예 못 치는 기간도 있죠?
“이번에도 거의 2주 만에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옛날에는 3일 정도 못 치면 너무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요. 그래서 이제는 (테크닉이 어려운) 라흐마니노프나 리스트 이런 거 안 치기로 했어요.”
Q : 피아니스트로서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의 작품들인데요, 아예 안 쳐요?
“진짜 여유가 없어요. 1월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못했어요. 지휘 공부는 정말 노동의 시간을 들여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제 피아노로 연주하는 작곡가는 딱 7명을 정했어요.”
Q : 일곱 작곡가? 누구인가요?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요.”
Q : 나머지는 안 쳐요?
“7명도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요! 슈베르트 소나타가 21곡이고 슈만 피아노곡이 몇 곡인데요! 얼마 전에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협연하자 해서 거절하고 안 한다고 했어요. 지난해 9월 정도부터였나. 이제 7명 작곡가 외의 작품 연주는 다 거절하고 있어요.”
Q : 아쉽지 않아요?
“아니요. 아쉬움을 느낄 여유도 없어요. 대신에 오케스트라로 말러, 슈트라우스 하잖아요. 오히려 복 받은 느낌이죠. 예전에는 늘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살았어요. 이제 피아노로는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싶어요.”
Q : 좋은 피아니스트를 지휘에 빼앗긴 것 같은 청중도 있을 것 같네요.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휘와 피아노를 별개로 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분법이죠. 기자님만 그러는 게 아니라 거의 다들 그래요. 지휘와 피아노가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다들 어렵나 봐요.”
Q :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둘 다 메인으로 하는 음악가는 다니엘 바렌보임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그 둘이 한 사람에게 공존할 수 있나요?
“저는 지휘를 할 때도 음악을 표현한다고 생각해요. 피아노도 내가 이렇게 저렇게 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음악이 들렸으면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지휘와 피아노가 서로 나뉘는 게 아니라니까요.”
Q : 피아니스트로서 굉장히 행복해진 것 같은데, 지휘자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오케스트라 악보는 일단 음표의 숫자 자체가 많잖아요. 그리고 소리의 밸런스도 생각해야 하고요. 여기 이 부분은 금관 악기가 크게 연주하도록 적혀 있는데 진짜 소리를 상상해보면 다른 악기와 균형이 안 맞을 것 같아 몇초만 조금 작은 소리로 조정을 한다든지 그렇게 온종일 해요. 그러다가 너무 답답하면 피아노로 가서 뚱땅뚱땅 소리를 내보고요.”
Q : 피아노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은데요?
“안식처라 할 수 있어요. 특히 지휘자는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단원들이 잘해줘야 하잖아요. 리허설할 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도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는 ‘단원 선생님들 제발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어요. 피아노 칠 때보다 훨씬 더 긴장돼요. 그런데 피아노는 얼마나 좋아요. 제가 하면 되잖아요.”
Q : 지휘하면서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었나요?
“인생을 배워나가는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가 작은 사회이기도 하고요. 모든 게 내 마음대로는 안된다는 것도 배우고요. 제일 많이 좋아진 건 음악을 듣는 능력이에요. 지휘자는 소리를 정말 잘 들어야 하는데 예전에 피아노만 칠 때하고는 듣는 수준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지금 보니 예전에는 제 능력이 형편없는 거였어요.”
Q : 행복해 보이네요?
“행복해요. 이번에 보시면 피아노 치는 게 완전히 달라진 걸 느끼실 거예요. 여유가 생기고, 진짜 재미있게 한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Q : 이번 독주회에서도 일곱 작곡가 중 셋(하이든·슈베르트·슈만)의 음악을 들려주죠. 어떻게 선정했나요?
“피아노로 노래하는 작품들을 골랐어요. 피아노를 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이 들릴 수 있는 곡들이요.”
Q : 김선욱 안에서 지휘와 피아노의 공존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 같나요?
“지금 지휘자 세계에서는 저를 피아노 치다 온 지휘자로 받아들이는 시작 단계예요. 피아노 세계에서는 더는 저를 피아니스트로 생각을 안 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과도기인데 잘 견뎌야죠. 꾸준히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계속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겠죠. 원하는 걸 하고 있다는 데에 정말 감사해요.”
김선욱은 7월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하이든의 소나타 E플랫 장조, 슈만의 다비드 동맹 무곡집,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을 연주한다. 공연은 6일 용인 포은아트홀, 9일 대구수성아트피아로 이어진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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