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조례 폐지에 개악까지? 서울시의회, 정부 발표와도 배치"

복건우 2024. 6. 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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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인터뷰] 본회의 표결 앞둔 폐지조례안,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전국 확대 우려"

[복건우 기자]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단체 주최로 열린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조례안 및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악안 가결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탈시설 조례를 만들어 놓고 2년 만에 다시 폐지하겠다며 개악안을 내놓았다."

서울시 탈시설 지원 조례(아래 탈시설 조례) 폐지의 시정 권고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이정하 활동가가 지난 17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의 폐지조례안 통과를 강하게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 활동가는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탈시설 조례 폐지는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시설들에 대한 기본적인 탈시설 계획도 세우지 않겠다는 것이며 이는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로드맵'과 전면 배치된다"라며 "조례를 폐지하겠단 것도 모자라 개악안을 만들어 '시설'을 '자립생활'이라고 포장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탈시설 조례는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산에 이어 지난 2022년 7월 전국에서 두 번째로 제정됐다. 이 조례는 탈시설 기본계획 수립, 장애인 자립지원 주택 운영, 거주시설 변화 지원 등 서울시 탈시설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서울시의회는 최근 이를 없애는 폐지조례안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지난 17일 보건복지위원회가 폐지조례안을 가결시켰다. 또 '탈시설' 용어가 빠진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 일부개정조례안'도 통과됐다. 앞서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등 일부 단체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탈시설 조례 폐지를 촉구해 왔다.

오는 25일 폐지조례안의 본회의 통과만 남겨둔 상황에서 이 활동가는 "탈시설은 찬반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라며 "의회는 시설 관련자들의 말을 들을 게 아니라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책무를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속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먼저 탈시설 운동을 시작한 단체다.

아래 이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시설 인권침해·사각지대 더 가려질 것"

- 탈시설 조례 폐지안이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시설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쪽으로 서울시의회의 방향이 명확해졌다. 탈시설 조례가 없으면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탈시설 지원이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그런데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폐지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은 지역사회 서비스 연계 등 최소한의 시설 변환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시설들에 대한 기본적인 탈시설 계획도 세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로드맵'과도 전면 배치된다.

게다가 유만희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국민의힘)이 대표 발의한 자립생활조례 개정안을 보면 '자립생활주택 운영(제16조)'에 관한 조항이 삭제돼 있다. 이미 장애인복지법에도 들어가 있고 전국으로 확대돼 있는 '장애인 자립생활'을 건드렸다는 점에 매우 우려스럽다. 대체 어떤 근거로 대안 조례를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중재적인 입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서울시 탈시설 지원조례를 폐지하는 조례안이 안건으로 상정돼 통과된 지난 17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제324회 정례회에서 유만희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정상훈 서울시 복지정책실장과 질의응답을 주고받고 있다.
ⓒ 서울시의회
 
- '지역사회 정착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폐지하겠다는 이유인데.

"중증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실은 굉장히 모호하다. 중증장애인으로 뭉뚱그려서 이분들이 모여 있는 거주시설을 지원하겠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이분들에게 필요한 건 개인별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탈시설 조례가 있어야 그동안 탈시설 결정 자체를 하지 못한다고 여겨진 중증장애인들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조사할 수 있고, 이분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사소통 지원 역시 이뤄질 수 있다."

- 대안 조례가 만들어질 경우 어떤 부분이 가장 우려되나.

"유 부위원장이 만들겠다는 조례는 자립생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시설 개념이 추가됐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지역사회의 지원을 줄이는 대신 시설 예산을 늘리고 시설 운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 소규모화된 시설이 늘어나고 시설 내 인권침해와 사각지대는 더욱 드러나기 어렵게 된다. 이것이 서울시에 그치지 않고 전국으로 확대될 것 같아 가장 우려스럽다."

- 본회의를 앞둔 서울시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탈시설 조례를 만들어 놓고 다시 폐지하겠다며 개악안을 내놓는 행태는 세계적으로도 흔한 사례가 아니다. 조례를 폐지하는 것도 모자라 시설을 자립생활이라고 포장하는 것을 즉각 중단했으면 한다. 탈시설은 찬반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의회는 시설 관련자들의 말을 들을 게 아니라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책무를 져야 한다."

한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단체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탈시설 조례 폐지안 가결을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탈시설은 장애인이 집단 거주시설에서 나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2008년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제19조와 이 협약에 관한 일반논평 5호 및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규정하는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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