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좌파연합에 겁먹은 프랑스 재계, ‘극우’ 르펜에 눈 돌려

조슬기나 2024. 6. 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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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총선을 앞둔 프랑스 재계가 극우세력의 집권을 막겠다며 등장한 좌파연합 대신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연합(RN)에 눈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급진적 증세 공약 등을 앞세운 좌파연합이 반(反)이민 정책 등을 최우선 순위로 삼은 극우 정당보다 오히려 기업 경영에 더 부정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연일 극우 집권 반대 시위가 열리면서 정치권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대표 극우정치인인 마린 르펜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극우 정당에 눈길 돌리는 프랑스 재계

주요 외신은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조기총선 캠페인이 본격화한 가운데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FP)의 공약에 겁먹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르펜 측과 접촉하기 위해 구애(court)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4명의 고위 경영진과 은행가는 현재 여론조사에서 1, 2위 경쟁 중인 RN과 NFP 중 기업 경영에 더 좋지 않은 쪽을 NFP로 꼽았다. NFP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공산당(PCF), 사회당(PS), 녹색당(EELV) 등 4당이 이번 조기 총선을 앞두고 RN의 집권 저지를 위해 선거 연대에 나선 일종의 좌파연합이다.

프랑스 증시 상장기업의 한 CEO는 "좌파연합은 강경한 반자본주의 공약에서 물러날 것 같지 않다"면서 "RN의 경제정책은 오히려 백지상태에 더 가깝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재계 경영진 역시 "2주 전에 재계가 RN을 응원하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배제를 고려했다고 말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유럽의회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극우 정당에 참패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즉각 의회를 해산하고 오는 30일과 내달 7일 조기 총선을 깜짝 발표한 상태다.

현재 조기총선 구도는 극우 정치인 르펜 주도의 RN, 좌파연합 NFP,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당 중심 등 3개 정치블록 간 대결로 이뤄져 있다. 총선을 앞두고 공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RN이 앞서고 있다. 이어 NFP가 2위다. 집권 여당인 르네상스당은 좌우에 치이며 3위로 한참 밀려났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RN이 하원을 대상으로 한 이번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할 경우 조르댕 바르델라 대표가 총리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극우 정치인으로 꼽혀온 바르델라 대표는 몇달전부터 각종 비공개회의에 재계 지도자들을 만나고 파리 에어쇼 등 행사에 참여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RN에서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장 필립 탕귀 하원의원은 "RN의 계획을 이해하고자 하는 로비스트, 투자자, 기업들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다"면서 "재정적자에 대한 선을 유지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계획을 제시할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르댕 바르델라 국민연합(RN) 대표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극우냐, 좌파연합이냐" 주요 경제공약 살펴보니

조기총선을 앞두고 RN을 저지하겠다며 등장한 좌파연합은 급진적 세금, 지출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앞세운 상태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 폐지, 복지 확대,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재도입, 부유층 감세 폐지, 고소득자 대상 소득세율 상향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모두 재계에서 꺼릴 수밖에 없는 의제들이다.

RN 역시 연금개혁을 폐지키로 하는 등 상당수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다만 이는 후순위에 그치며 극우 정당의 특성에 맞게 국경통제 강화, 속지주의 폐지, 불법 이민자 대상 국가 의료지원 폐지 등 반이민 정책을 최우선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RN은 좌파연합과 같은 과세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확인했다. 대신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를 금융자산에 대한 재산세로 대체하기로 했다.

주요 외신은 "극우와 좌파연합 모두 마크롱 대통령의 기업친화적 정책과의 급격한 단절을 원한다"면서도 재계에선 경제정책에 한해서는 극우 정당의 정책방향이 좌파정당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기업가는 "좌파연합의 경제정책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프랑스가 자본주의 체제를 떠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그는 "극우 정당의 경우 경제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도 덧붙였다. 한 기업 경영진은 프랑스 경제전략을 극우 정당 또는 좌파 정당에게 맡기게 된 현 상황에 대해 "전염병과 콜레라 사이의 선택"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블룸버그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 정당은 좌우 모두의 공격을 받고 여론조사에서도 3위로 한참 뒤지고 있다"면서 "프랑스 내에서는 극우 정당이 국가 권력을 잡지 못하게끔 암묵적으로 합의가 이뤄져 왔으나, 이러한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극우 또는 강경 좌파의 집권 가능성에 대해 "극단주의 정치, 경제 포퓰리즘과 금융 불안정을 뜻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간 시장에서도 프랑스의 경제정책이 극우 또는 강경 좌파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에 불확실성이 확인돼왔다. 유럽의회 선거 직후인 지난주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40지수는 하락세를 보였고, 프랑스 국채 투자 리스크를 보여주는 시장 지표인 프랑스 국채와 독일 국채 간 금리 스프레드는 2011년 유로존 부채위기 이후 가장 급격한 움직임을 보였다.

다만 RN의 실질적 지도자인 르펜 의원은 전날 공개된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금융시장이 RN의 프로젝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를 존중하며 제도적 혼란을 바라지 않는다" 등의 발언으로 시장을 안심시키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RN이 총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마크롱 대통령의 퇴임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이에 이날 CAC40지수는 3거래일 만에 처음 반등했다. 프랑스 국채와 독일 국채 간 금리 스프레드도 8거래일 만에 처음 축소됐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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