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바둑기사, 컴투스타이젬 대국실서 AI 썼다 ‘영구 제명’

이영재 2024. 6. 1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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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징언 5단, 컴투스타이젬 프로 대국에서 AI 치팅
신고 받고 출동한 운영자, 쉬징언 실명 ID ‘영구 정지’
프로 바둑계에서 인공지능 활용한 치팅 사례 증가
타이젬 측에선 실명 ID ‘해킹’ 정황 포착해 파악 중
대만기원 소속 프로기사 쉬징언 5단이 국내 온라인 바둑 사이트 컴투스타이젬에서 인공지능 치팅 의혹을 받았다. 쉬징언 5단의 실명 프로 ID는 ‘영구 정지’ 조치됐다. 컴투스타이젬 캡처

생성형 AI 등장 이전에 ‘알파고’ 쇼크를 가장 먼저 겪었던 프로 바둑계가 인공지능(AI) 등장 후폭풍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번엔 한국 바둑리그에서 활약했던 대만기원 소속 프로기사가 철퇴를 맞았다.

18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만 프로 바둑 선수 쉬징언 5단이 한국 게임사 컴투스타이젬이 운영하는 온라인 바둑 사이트에서 대국을 하다 실명 ID에 ‘영구 제명’ 제재를 당했다. 쉬징언 5단은 한국 프로기사 최민서 4단과 대국에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해 대국한 의혹을 받는다.

사건의 발단은 16일 밤 컴투스타이젬 대국실에서 시작된 프로기사 실명 대국이었다. 온라인 바둑 플랫폼인 컴투스타이젬에선 바둑 프로 선수의 ‘실명’을 ID로 만들고 ‘프로’를 상징하는 대문자 P를 붙여 공식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이날은 대만 프로기사 쉬징언 5단이 한국 신예 최민서 4단과 대국을 벌였다.

쉬징언 5단은 지난해 국내 최대 기전인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에 출전해 3승을 올린 대만기원 소속 기사다. 쉬징언 5단에게 여자 바둑 최강자 최정 9단, 한국 신예 최고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한우진 9단을 비롯해 한국 랭킹 10위에 올라 있는 강자 김지석 9단까지 덜미를 잡힌 바 있다.

이날 쉬징언 5단과 최민서 4단 대결에는 이례적으로 T포인트(컴투스타이젬 게임 머니) ‘베팅’이 몰리면서 관전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컴투스타이젬에서는 유료 상점을 통해 현금 3만원에 2억4000만 T포인트를 준다. 이날은 대국이 시작되자마자 5억 T포인트를 베팅한 이용자를 필두로 총 40억 T포인트를 상회하는 금액이 ‘1구간(1~30수)’에 몰렸다. 컴투스타이젬에선 한 판의 대국에 총 4번, 각각 30수 간격 1~4구간으로 나눠 베팅을 진행한다.

문제는 쉬징언 5단의 ‘인공지능 일치율’이었다. 쉬징언 5단은 이날 대국에서 80%를 상회하는 AI 일치율을 보였다. 통상적으로 한 판의 대국에서 인공지능 일치율 평균이 70%를 넘기기 매우 어렵다. 인공지능과 가장 가까워 ‘신공지능’으로 불리는 신진서 9단 등 정상급 기사들조차 당일 컨디션이 좋을 때 간신히 해낼 수 있는 기예인데, 초속기로 진행하는 온라인 바둑에서 80%대 인공지능 일치율은 누가 봐도 석연치 않다.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는 AI 프로그램이 보편화됐다. 이로 인해 프로기사의 바둑을 누구나 쉽게 인공지능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게 됐고, 심판이 아니라 바둑 팬이 프로 선수의 ‘치팅’을 잡는 상황까지 등장했다. 이 대국 역시 중간에 신고를 받고 출동한 운영자가 대국을 중단시키고 AI의 도움을 받아 대국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쉬징언 5단의 프로 실명 ID를 ‘영구 정지 처리’ 한다고 공지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컴투스타이젬 관계자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대국 장소 IP를 추적한 결과 ‘중국’으로 확인됐다”면서 “1차적으로 본인이 아닌 중국 유저가 쉬징언 5단의 ID를 ‘해킹’해 대국한 것으로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쉬징언 5단이 실제로 직접 대국을 했는지, 즉 16일에 중국과 대만 중 어디에 있었는지 파악한 이후 확인이 되면 해당 내용을 공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바둑 사이트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대국을 하다 적발돼 ID 삭제 징계를 당한 홍성지 9단이 온라인 바둑 커뮤니티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이버오로 게시판 갈무리

프로 바둑계에서 대국 중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적발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 한국 프로기사 홍성지 9단은 중국 온라인 바둑 사이트 ‘한큐 바둑’에서 AI 프로그램을 사용해 대국하다 ID가 삭제 당하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당시 홍 9단은 “순간적인 충동과 제 짧은 생각이 바둑 팬 분들에게 피해를 드렸다고 생각”한다면서 “저로 인해 순수하게 공부하는 기사들과 바둑을 좋아해 주시는 팬 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린 점 죄송하고 사과드린다”는 일종의 반성문을 게재한 바 있다.

2020년에는 ‘천재 소녀’ 김은지 2단(당시)이 한국기원 자회사인 사이버오로 온라인 대회에서 ‘인공지능 치팅’을 했다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김 2단은 대국 중에 AI를 활용하지 않았다고 발뺌했지만 온라인 바둑커뮤니티 등에서 바둑 팬들이 주축이 돼 비정상적으로 높은 인공지능 일치율 등을 근거로 제보를 이어갔고, 결국 치팅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기원은 당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소속 프로기사들이 강도 높은 비난을 이어가고 인공지능 전문가 소견까지 뒷받침 되면서 분위기가 악화하자 결국 김은지 2단에게 ‘자격정지 1년’ 징계 처분을 내린 바 있다. 

프로기사 바둑 유튜버 조연우 2단이 인공지능 치팅에 대한 징계로 자격정지 1년 처분이 합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영상을 올렸다. 유튜브 프로연우 채널 갈무리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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