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증권'으로 몰려가는 퇴직연금 '90조 돌파'…수익률 경쟁 치열
선두는 미래에셋증권, 증권사간 점유율 경쟁 치열
운용성과 제고 위한 경쟁력, RA로 차별화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는 등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현실화하고 있다.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수요가 '안정성'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퇴직연금 관련 사업 역량을 강화해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으며 로보어드바이저(RA) 도입 등을 통해 퇴직연금 운용의 질적 성장을 시도하고 있다.
연금 '수익률' 중요성↑…"시장 더 커진다"
18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이 90조7041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76조8838억원) 대비 약 18.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은행의 적립금(202조3522억원)보다 절대 규모는 작지만 성장률로 보면 은행(15.7%), 보험(7.1%) 대비 가장 빠른 증가세다. 이에 금융권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증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2.7%에서 23.5%로 높아졌다.
증권사 간 점유율을 보면 미래에셋증권의 적립금(25조5177억원)이 전년 동기(20조9397억원) 대비 21.9% 증가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는 전체 증권사 적립금의 28%를 차지하는 규모다.
미래에셋증권 다음으로는 현대차증권(16조3804억원)이 뒤를 쫓고 있다. 다만 현대차증권의 경우 자사 계열사의 비중이 77%(12조6615억원)로 전체 증권사 중 가장 높다.
뒤이어 한국투자증권(13조5714억원), 삼성증권(12조8612억원) 등이 추격 중이다. 특히 삼성증권은 상위권 증권사 중 가장 가파른 속도로 성장했다. 삼성증권의 올해 1분기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년 동기(10조2245억원) 대비 25.8%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퇴직연금 시장에서 증권사의 성장이 가파른 이유는 안정적인 상품 운용에 따른 이자 수익보다는 수익률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지난해 7월부터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시행되며 증권사의 수익률 관리 역량이 주목받고 있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시대적 변화"라며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개인퇴직연금(IRP) 등에서의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노후 생계를 책임질 자산이 낮은 금리의 유휴자금으로 방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사업장 퇴직연금 의무화, DC형 중도 인출 요건 제한 등 연금 제도 개편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된 바 없으나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전 사업장 퇴직연금 도입이 현실화한다면 연금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 선점 경쟁 치열…"RA 본격 침투할 것"
증권가는 퇴직연금 시장에 지속적으로 뭉칫돈이 유입될 것을 예상하고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수천억에 달하는 '수수료 쟁탈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다.
업계 1위인 미래에셋증권은 퇴직연금 전담 본부를 통해 개인별 맞춤 연금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등 차별화된 연금자산관리 서비스와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또 현대차증권은 관련 조직, 인프라, 컨설팅을 확대하며 퇴직연금 관련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현대차증권은 퇴직연금 적립금 중 비계열사의 비중을 꾸준히 늘리며 연금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지는 모양새다.
한편 인공지능(AI) 기반의 RA 퇴직연금 일임 운용이 하반기 중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업계에서는 퇴직연금 서비스의 경쟁력 제고와 고객 유치를 위해서는 RA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RA 서비스는 자동화된 포트폴리오를 추천만 하는 '자문형 서비스'와 상품 매매까지 알아서 하는 '일임형 서비스'로 구분된다. 그간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일임 형태의 운용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7월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퇴직연금 적립금에 대해서도 투자일임 RA 서비스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테스트베드 심사를 진행 중인 상태로, 업계는 RA 퇴직연금 일임 서비스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에 시장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증권사들은 퇴직연금 관련 RA 상품의 본격적인 판매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AI 관련 조직을 개편하고 RA 기술을 자체 개발하거나 관련 업체와 제휴 또는 지분 투자를 하는 등 시장 선점에 가장 적극적"이라며 "투자일임 라이선스가 없어 제약이 있는 은행권의 경우 RA 일임업자와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RA 서비스가 샌드박스 형태로 시범운영을 거친 후 전면 허용된다면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일임업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증권사의 수혜가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 선점을 위한 금융사 간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아가 운용 수익률 제고는 물론 연금 인출 관련 전략 등을 포함한 서비스의 고도화가 필요할 전망이다. 한 금융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양적으로는 고성장하고 있으나 질적으로는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RA의 활용을 통해 수익률 등 질적인 수준을 일정 부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퇴직연금 서비스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운용뿐만 아니라 인출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최종 퇴직연금 수령액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보험, 카드사 등과의 협업을 통한 적립금 증대, 인출 전략 컨설팅 등으로 서비스 유형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승형 기자 trus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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