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목의 시선] (장)원영적 사고 말고 (장)기하적 사고도 있다
얼마 전 ‘원영적 사고’가 SNS에서 화제가 됐다. 빵이 자기 앞에서 품절돼 기다려야 하자 ‘오히려 갓 구운 빵을 먹을 수 있게 돼 잘됐다’고 생각한 걸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 사고를 많은 이들이 인상 깊게 본 것이다.
‘우희적 사고’도 있다. 지금은 대세 배우가 된 천우희가 과거 오디션에 숱하게 떨어질 때, 낙담하지 않고 ‘나중에 얼마나 잘 되려고 이럴까. 내 삶에 에피소드 하나 더 생겼네’라는 생각으로 계속 도전했다는 것이다. 긍정적 사고는 지나친 낙관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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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초긍정적 사고, 큰 반향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도 인기
비교지옥 벗어나 자신의 길 가야
」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외모 폄하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내 얼굴로 해나간다. 배우로서 나만의 길을 걷겠다’는 믿음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가 된 천우희처럼 말이다.
가수 장기하도 남과의 비교, 획일적 가치관에 휩쓸리지 말자는 ‘기하적 사고’를 노래로 설파하고 있다. 대표적인 노래가 ‘부럽지가 않어’다. ‘너네가 아무리 자랑해도, 난 전혀 부럽지가 않다’는 내용의 노래가 단순한 치기로 느껴지지 않는 건,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부러우니까 또 자랑을 하고’란 가사를 통해 모두가 과시와 부러움(자기비하)의 지옥에서 허우적대며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세태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백만원 가진 내가 십만원 가진 너보다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행복할까/아니지/세상에는 천만 원을 가진 놈도 있지/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짜증나는 거야/누가 더 짜증날까/널까 날까 몰라 나는’이란 가사처럼, 비교는 상대적인 것이고 하자면 끝이 없다.
‘돈, 재능, 인기 그 무엇을 가졌든 못 가졌든 행복은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다. 모든 사람은 불행을 헤치고 나름의 행복에 닿고자 고군분투한다. 행복 앞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모두가 평등한 셈이므로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을 부러워할 이유는 없다.’(장기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 중에서)
‘부러워하지 않는 마음’이 공허한 ‘정신승리’에 그치면 않으려면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장기하는 ‘그건 니 생각이고’란 노래에서 강조했다.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그냥 니 갈 길 가/이 사람 저 사람/이러쿵저러쿵/뭐라 뭐라 해도/상관 말고/그냥 니 갈 길 가’
이 노래의 메시지처럼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남들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제 갈 길 가면 되는 거다. 남의 시선과 허세의 노예가 되지 말고, 내게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남 부럽지 않은 삶이 아닐까.
‘불필요한 것을 제거할 때 희열을 느낀다. 음반 작업도 그렇다. 소리는 줄이고 여백은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돈을 아끼고 말고와는 다른 문제다. 인생에 군더더기가 없다는 데서 오는 쾌감이다.’
그의 산문집에서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은 대목이다. 군더더기를 줄이고, 불필요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하적 사고의 요체가 아닌가 싶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말처럼 비교는 불행의 원료이고, 관계는 행복의 연료다. 장기하는 ‘관계’와 ‘소통’에 대한 노래도 최근 세상에 내놓았다. 비비가 불러 히트한 곡 ‘밤양갱’이다.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한 개 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남녀 간 이별 얘기지만, 깊게 보면 소통의 실패에 대한 노래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진솔한 대화는 사라지고, ‘네가 날 제대로 이해 못했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며 상대 탓하기 바쁜 현실에서 밤양갱처럼 달달한 소통은 요원할 뿐이다.
모두가 획일적 가치와 비교의 노예가 돼버린 세태에 이어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는 점에서, 장기하는 ‘따뜻한 아웃사이더’이자, ‘노래하는 사회학자’ 같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늘 그의 노래에서 배우고 깨우친다. 채우기보다 비우기, 치장보다 여백, ‘자랑’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남은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희망 없는 청춘의 일상을 노래했던 데뷔 때부터 줄곧 노래와 같은 삶을 살아가며, 유쾌한 풍자와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장기하.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는데, 부러워하지 말라 했는데… 난 그가 정말 부럽다.
정현목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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