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주민에게 후지산 조망권 돌려준 어떤 건설사
지난 한 주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가 있었다. 도쿄에서 서쪽으로 차로 40~50분 떨어진 구니타치시(国立市)에 있는 신축 맨션을 철거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후지산이 보이는 거리(富士見通り)로 잘 알려진 구니타치시는 도쿄도 절경 100선에도 꼽힌 곳이다. 이곳에 새 건물이 들어선 뒤 후지산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주민들 항의가 이어지자 건설사가 자진하여 이를 해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건설사가 다 지은 건물을, 그것도 계약자에게 양도를 한 달 앞두고 왜 철거한다는 건지 궁금했다. 문제의 맨션을 찾아가 보니 10층짜리 1개 동 건물이었다. 주변에는 이보다 더 큰 맨션도 있었고, 반대 움직임이 다른 건물보다 유독 컸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주민들은 철거하기로 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분위기였다. 착공 전 거리 사진을 보면 주민 반발은 이해할 만했다. 구니타치 기차역부터 번화가가 후지산 방향으로 죽 뻗어 있고, 그 길을 오가며 바라보는 후지산은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었으리라.
새로 들어선 건물은 후지산의 절반쯤을 가리고 있었다. 후지산을 가린 건물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가자 맨션을 지은 세키스이하우스(積水ハウス) 측이 곧바로 철거를 결정했다. 세키스이하우스는 일본에서 대형 건설사로 꼽힌다. 애초 주민협의회측은 4층 이하로 지을 것을 요구했지만, 11층으로 계획했던 건물을 10층으로 딱 1개 층 낮추는 선에서 건축 허가가 났다.
사실 업체 입장에선 소송이 벌어져도 그다지 불리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20여 년 전에도 맨션 건설사를 상대로 주민들이 높이를 낮추라며 소송을 걸었지만, 대법원은 건설사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도 손해를 감내하고 철거하기로 이례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현지 매체들은 부정적인 여론으로 회사 이미지가 손상당하는 게 더 큰 손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쨌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조망권의 승리인 셈이다.
20여년 전 구니타치시 주민들은 패소했지만 법적 이정표를 세웠다. 당시 판결에선 경관에 대한 지역민들의 보편적 권리를 인정했는데, 이는 2005년 ‘경관법’의 전면 시행으로 이어졌다. 각 지자체가 건축주를 상대로 건물의 높이나 외관 등에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조망권을 부동산의 가치로만 따지는 편에 익숙하지만, 사실 경관이나 조망은 누구에게나 허락돼야 할 보편적인 자산이란 점을 되새기게 한다. 한강을 병풍처럼 에워싼 아파트 단지들에서 언급되는 ‘한국식 조망권’에 위화감이 드는 이유다.
정원석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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