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두 개의 바둑돌
이 세상에는 ‘정말 잘 쓴다’ 싶은 작가와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은 작가가 있는데, 『매니악』의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후자다. 그의 관심사는 온통 과학과 과학자들이다. 놀라운 지성, 치열한 탐구와 발견의 순간, 약점과 기벽 등 과학자들은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복합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을 포착한 작가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짜는데, 그 솜씨가 흡사 브라질 축구를 보듯 현란하다.
그의 두 번째 책인 『매니악』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인공지능의 선구자 폰 노이만을 다각도로 조명한 2부가 책의 중추에 해당하지만, 내가 정말 감탄한 것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5차례에 걸친 바둑 대전을 그린 3부다.
특히 2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놓은 37수, 네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이 놓은 78수를 묘사한 장면은 흥분의 절정에 달한다. 알파고가 ‘쎈돌’ 스타일로 이세돌의 허를 찌르는 순간이나 자신만만한 세계 최고의 바둑 천재가 무너지는 모습, 연속되는 패배는 ‘인간이 기계에게 지는’ 순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중 알파고의 37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로서 그 자리에 돌을 놓을 확률을 계산하면 0.0001, 만분의 일이었다. 세 번째 대국을 내리 지고 네 번째 판도 알파고의 승리로 기울 무렵, 세돌은 바둑판 정중앙을 벼락같이 가르는 78수를 놓는다. 이른바 ‘신의 한 수’, 판을 뒤흔드는 대담한 도박이 승리를 이끈다. 이것은 ‘인간이 AI를 지성으로 이긴 유일한 찰나’였고, 확률은 0.0001. 똑같은 만분의 일이었다.
이후 어떤 인간도 인공지능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는 후일담이 이어진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발전할까. 책을 덮은 이후에도 질문은 남는다. 이 책은 과학서로 읽어도, 소설로 읽어도 만족감을 준다. 장르를 나누는 것은 유통의 일환일 뿐, 책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창의적인 글쓰기 ‘고수’들이 존재하니까.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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