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82세 ‘피아노 대모’ 신수정의 연주
6월에는 다양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회를 접하고 각양각색의 감동을 받았다. 임윤찬(20)의 독주회(롯데콘서트홀)는 젊은 패기와 더불어 독특한 음색과 입체적인 조형이 눈길을 끌었고, 백건우(78)의 모차르트 리사이틀(예술의전당)은 맑고도 쌉싸래했던 천재 음악가의 슬픔에 공감하며 여운을 남겼다. 가장 최근인 14일 신수정과 김응수의 비엔나 프로젝트(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신수정(82)의 연주는 노목의 푸르른 신록을 보는 듯, 원숙하면서도 밝고 싱그러웠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의 바이올린 작품들을 연주한 ‘비엔나 프로젝트’의 선곡은 마음에 쏙 들었다. 관객에겐 기쁨이지만 연주자는 어려운 작품들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48)는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 작곡가들 작품 해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첫 곡인 슈베르트 소나타 D.384의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던 도입부를 들으면서 점차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빈의 음악가에 대한 존경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피아노가 여유롭게 유유자적할 때는 바이올린도 한숨 돌리듯 보조를 맞췄다. 그렇다고 계속 느린 템포는 아니었다. 보통 연주보다 더욱 빠른 악구로 몰아칠 때는 피아노도 경쾌하게 포인트를 짚었다. 신수정은 모차르트 소나타 K.378에서도 또랑또랑한 타건으로 바이올린이 흘러갈 길을 내줬고, 유일한 단조곡인 슈베르트 D.408에서는 연주에 비장감을 더 실어주었다. 2부는 대곡인 베토벤 소나타 9번 ‘크로이처’였다. 1악장 초반에 김응수의 바이올린 현이 끊어지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무사히 곡을 마쳤다. 물론 이날 연주에는 잔 실수도 있었고 아찔했던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빈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걸작들을 음미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1942년생인 신수정은 14세 때 지금의 서울시향의 전신인 해군교향악단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연주하며 데뷔했다.
런던 필하모닉, NHK심포니 등의 내한공연에서 협연했고 야노스 슈타커, 루지에로 리치 등과 리사이틀 무대에 섰다. 서울대 음대 교수와 학장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이다. 뭰헨 ARD, 센다이, 하마마츠, 리즈 콩쿠르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조성진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그녀의 연주를 음미하며 K클래식의 시대는 어느 날 갑자기 와버린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젊은 연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건 분명히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지나친 쏠림 현상은 음악 생태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개성 있는 중견들과 자기관리를 잘 해온 원로들의 무대가 많아지고 또 주목받게 된다면 K클래식의 뿌리와 기반이 더욱 단단해지지 않을까 한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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