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물이 너무 실재 같아도 불쾌… 버추얼 아이돌이 2D캐릭터인 이유
버추얼 아이돌. 가상현실 속 인물들로 구성된 아이돌팀을 말한다. 최근 버추얼 아이돌의 활동이 눈에 띈다. 고퀄리티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것은 기본, 팬들과의 소통에도 열심이어서, 챌린지 영상도 올리고, 심지어 팝업스토어까지 연다. 그 결과 지난 3월 플레이브의 미니 2집은 초동 판매량이 50만장을 돌파할 정도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플레이브의 모습이 2D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기술 발달로 사람인지 가상인간인지 구분되지 않는 3D 캐릭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왜 굳이 플레이브 멤버들을 2D 형태로 표현했는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역시 인기를 얻고 있는 또 다른 버추얼 아이돌인 ‘이세계아이돌’도 비슷하다.
물론 모든 버추얼 아이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걸그룹 에스파의 조력자로 등장한 ‘나이비스’나 4인조 걸그룹 ‘메이브’ 등은 인간의 모습과 매우 흡사한 풀 3D 캐릭터의 외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가장 성공한 버추얼 아이돌들이 2D 캐릭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은 독특하다. 이즈음에서 생각나는 개념이 있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는 로봇 공학 분야에서 개발된 개념인데, 인간이 아닌 사물이 인간의 모습을 갖춰가면 해당 사물에 대한 호감이 상승하다가, 지나치게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면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로봇 청소기가 지금처럼 원판 모양을 하고 있을 때보다 머리, 몸통, 다리 형태를 갖는 서빙 로봇의 모양을 하고 있으면 호감도가 더 상승하는데, 더 나아가 사이보그 같은 형태로까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호감도가 급락한다는 것이다.
불쾌한 골짜기는 ‘폴라 익스프레스’라는 영화와 더불어 유명세를 탔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3D 애니메이션으로 당시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실제 인간과 구분이 안 될 수준의(실제로는 좀 차이가 나긴 한다) 캐릭터를 구축했는데, 흥행에는 큰 실패를 맛봤다. 이 흥행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주목했는데, 너무 사람처럼 보이는 캐릭터들이 불쾌감을 줬다는 것이다. 그 외에 ‘캣츠’, ‘명탐정 포켓몬’ 등의 영화들도 모두 불쾌한 골짜기의 제물로 평가된다.
불쾌한 골짜기의 발생 원인에 대한 여러 이론들이 있다. 어떤 이론은 인간이 어떤 대상을 볼 때 특정 범주로 쉽게 할당하지 못하면 불쾌감이 발생하며, 이 감정이 불쾌한 골짜기 현상의 원인이라고 봤다. 사람인지 로봇(혹은 기타 인공물)인지 쉽게 구분하기 힘든 외형을 갖고 있을 때 불쾌한 골짜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론은 사람의 형태에 사람으로 보기 힘든 요소들이 있으면, 이 모순이 불쾌감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포토샵으로 얼굴을 보정할 때 지나치게 눈을 키우면 이상하게 보이는데, 이런 현상도 분명 얼굴 형태는 사람인데 사람이 갖기엔 너무나도 큰 눈을 갖고 있어서 발생하는 일종의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부정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예외적인 몇몇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지, 일관되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의 발전으로 불쾌한 골짜기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AI로 만들어 내는 가상인간의 경우 이제 실제 사람인지 가상인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에, 적어도 가상현실에서는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2D형 캐릭터 기반인 플레이브나 이세계아이돌의 흥행은 여러 의미로 흥미롭다. 흥행 원인에 대해 다양한 가설이 있겠으나, 지각 심리학자로서 나의 미흡한 의견을 더해보자면, 나는 2D형 캐릭터가 갖는 표현의 자유로움에 주목하고 싶다.
만일 정말 왕방울만한 눈을 표현하고 싶다면, 2D형 캐릭터에서는 얼굴 면적의 절반 크기로 눈을 그려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만화에서는 그런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3D형 캐릭터에 이런 왕방울만한 눈을 그려 넣는다면 불쾌한 골짜기의 제물이 될 것이다.
가상현실에서 실재 인물과 구분되지 않는 가상인간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큰 발전이고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실물과 동일하게 만든다는 것은 물리적·생물학적 한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일 수 있다. 실재와 똑같은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도 멋진 꿈의 구현이지만, 어떤 어김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2D 캐릭터를 만드는 것 역시 멋진 꿈의 구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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