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사회 문제다 [김선걸 칼럼]
며칠 전 신문에서 이런 대목을 봤다.
“AI 활용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이 풍부한 ‘인턴 군대’를 거느린 것과 같다.” (프레더릭 안실 호주 UNSW 교수)
AI의 놀라운 효율성을 강조하는 얘기였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전혀 다른 의문으로 다가왔다. 저 말대로라면 AI에 대체된 수많은 인턴들은 어디에 취업해야 하나?
처음 AI가 출현했을 땐 AI에 친숙한 젊은 세대와 친숙치 않은 세대 간 ‘AI 디바이드’를 걱정했다. 당연히 나이 든 사람들이 도태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 양상은 정반대다. 번역, 발췌, 정리하는 단순 업무나 비서, 통역은 필요가 없어졌다. 젊은 세대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없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굴지의 로펌들이 ‘클럭(초임변호사)’들을 덜 뽑고 인턴도 줄였다. 2024년 국내 10대 로펌이 채용한 신입 변호사 수는 총 228명으로 전년(278명) 대비 18%(50명) 줄었다. 예전에는 변호사들이 입사하면 제일 먼저 우편물로 담당 부서를 익히고, 판례를 찾아 분석하며, 클라이언트 보고서나 법원 서류를 작성하면서 일을 배웠다. 그런데 이제 우편물은 이메일로 대체되고, 판례는 AI가 단 몇 분 만에 찾아주며, 문서 작성도 AI로 금방 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굳이 젊은 변호사들에게 밤새 판례 분석을 시킬 필요가 없다”며 “경험 많은 베테랑을 데려오고 AI로 확 줄어들 인력 수요를 대비하는 게 로펌에는 최상의 경영 전략”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뿐 아니라 다른 전문직, 일반 기업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베테랑 임원 한 명이 열 명의 직원을 데리고 일했다면, 이제 그 베테랑 한 명이 AI를 활용하면 성과가 나오는 분야가 늘고 있다. 기업은 이런 직원 고용을 줄이고 있다. 물론 영업, 홍보, 대관, 채널 관리처럼 대면 업무가 필수인 현장 조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화이트칼라’라 불리는 대부분의 자리는 이제 한두 명의 베테랑만 있으면 업무에 큰 지장이 없는 시대다.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보던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추세대로 사회는 빠르게 변할까?
파괴적인 혁신 앞에는 늘 못지않은 반작용이 있다. 이미 곳곳에선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의 ‘작가 파업’ 사태다. 작가조합(WGA)은 AI 사용에 반대하며 장장 146일간 파업을 벌였다. 넷플릭스 등 제작사들은 50억달러의 추정손실을 입고 결국 합의했다. 작가들의 일방적인 승리였다는 평가가 많다. 합의의 핵심은 ‘AI는 작가들만 사용하고 제작사는 쓸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앞으로 3년간 ‘작가조합’은 AI로 편하게 일하지만 제작사들은 AI를 쓸 수 없다. 결론적으로 AI로 영화 제작이 효율화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간 셈이다. 올해 미국 캘리포니아의 간호사들도 AI발 파업을 벌이는 등 ‘반기술’ 트렌드는 가속화되고 있다.
이른바 ‘AI 러다이트’다. 러다이트는 산업혁명 시기 영국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운동’을 뜻하다. 직업을 잃거나 월급을 깎인 숙련공들의 기계화에 대한 항거였다.
IT 강국 한국은 ‘AI 러다이트’의 첨예한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AI와 업무가 겹치는 직원들의 실직에 대한 걱정은 상상 이상이다.
‘AI 러다이트’를 극복 못하면 AI를 잘 활용하는 나라에 비해 뒤떨어질 것이다.
이제 AI는 과학의 문제기에 앞서 사회 문제다. 담아낼 사회적 합의의 크기에 따라 국가든 기업이든 발전이 결정된다.
사회적 합의의 역할과 책임을 떠안은 곳은 국회다. 퇴행하는 국회에 이렇게 중요한 미래를 맡겨야 하나. 다른 방법이 없을까.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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