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병원 일부 휴진 동참…"병원 옮길 것" 맘카페는 분노했다
서울대병원이 17일 휴진에 나선데 이어 전국 동네 병·의원 일부가 18일 하루 휴진하는 방식으로 집단 행동을 벌인다. 서울성모·서울아산·삼성서울·세브란스병원 등 빅 5 병원 교수 일부도 동참한다. 정부는 동네 병·의원 전체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데 이어 집단 휴진을 결의한 대한의사협회(의협)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신고했다. 의협 회장 등 집행부 17명에게는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금지명령을 내렸다.
의협은 17일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예고했던 대로 18일 범 의료계 집단휴진을 하고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라며 “불가피하게 국민들께 불편을 드리는 소식을 전하게 돼 안타깝고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의협은 전날 정부에 의대 증원안 재논의 등 3가지 요구안을 제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획대로 휴진을 펼친다고 예고한바 있다. 정부는“전면 휴진을 전제로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거부의사를 밝혔다.
의협은 “정부는 끝내 의료계의 진심을 외면하고 무참히 거부했다”라며 “정부의 잘못된 의료 정책 추진이 국민 생명과 건강에 엄청난 위협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리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의사들만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료계의 처절한 몸부림”이라고도 했다. 또 “정부 폭정을 막을 방법은 단체 행동밖에 없음을 국민들도 이해해달라”라며 “의료 정상화를 위한 투쟁을 응원해달라”고 했다.
의협의 집회는 18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대로에서 ‘정부가 죽인 한국의료, 의사들이 살려낸다’ 주제로 열린다. 개원의와 봉직의, 의대 교수 등 전 직역이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17일 인터넷 의사 커뮤니티에는 휴진을 예고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글쓴이는 “하루 쉬면 손해가 막심하지만 내일 하루 휴진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라며 “그냥 진료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돈 몇 백에 업무정지 나와도 감수하기로 했다”고 썼다.
보건복지부가 13일까지 받은 휴진 신고 현황에 따르면 전국 3만6371곳 의료기관(의원급 중 치과·한의원 제외, 일부 병원급 포함) 중 1463곳(4.02%)이 휴진을 예고했다. 2020년에 의협이 주도한 휴진에 개원의 참여율이 10%대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 한 의원 원장은 “진료할 것”이라며 “(동참 안 하는)이유는 없다. 할 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조무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18일 휴진 여부를 묻는 글에 “정상 진료한다”란 댓글이 많이 달렸다.
파급력이 큰 빅 5 병원의 휴진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휴진에는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도 동참하기로 했다. 다만 이들 병원 관계자는 “집단 휴진 움직임은 없고 일부만 개인 사정으로 휴진하는 정도”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현재까지 진료를 조정한 교수는 한자릿수 정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휴진율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2020년과는 양상이 다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휴진 신고를 안 하고 문을 닫는 곳도 있을 것으로 예상돼 실제 휴진율은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협은 정부가 내린 사전휴진신고명령을 따를 이유가 없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의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의협에서 보건소에 휴진 신고를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라며 “휴진 투쟁에 참여하지만 보건소에 신고를 하지 않은 개원의들이 대다수일 것”이란 글이 올라왔다. 이밖에 문을 연 뒤 한 시간 만에 닫는다거나, 오전만 쉬는 방식으로 변칙휴진에 나서겠다는 곳도 있다. 한 시·도 의사회장은 “분위기를 보니 꽤 많은 의사가 동참할 것 같다. 2020년보다는 분명 많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7일 지자체를 통해 전국 3만여 동네 병·의원에 등기 우편으로 “의료법 제59조 제2항에 의거 즉시 환자 진료 업무를 개시해 달라”는 내용의 업무개시명령을 발송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8일 당일 오전 9시에 문자로 일괄 한 차례 더 명령을 내릴 것”이라며“이후 전화 등으로 휴진 여부를 파악하고 휴진율이 30% 이상이면 현장에 나가 채증하고 의료법에 따른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이날 투표를 거쳐 휴업을 결의한 의협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사업자단체인 의협이 개별 사업자인 개원의에게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담합을 강요했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자단체금지행위 신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2000년 의약 분업 때 의협 회장이 이 법 위반으로 면허가 취소됐으며, 2014년 원격의료 반대 파업 때는 의협이 시정명령 조처를 받았다. 의협 회장과 부회장 등 집행부 17명에는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환자단체는 “환자 불안과 피해를 정부를 압박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라며 “의협은 의료계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으로 보이고 의료전문가로서 사회적 책무는 실종됐다”라고 비판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성명에서 집단 휴진에 대해 “벼랑 끝에 놓인 환자들의 등을 떠미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지역 맘 카페에선 휴진 병·의원 리스트를 공유하며 “기억해뒀다 평소에도 가능하면 다른병원 이용해야겠다” “언제라도 곤란한 상황 안겪으려면 이 참에 병원 옮겨야겠다” 등 불매 운동 목소리도 나왔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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