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진밖에 모르는' 린킨 파크, 전 세계 휘어잡은 데뷔작

장준환 2024. 6. 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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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다시 읽기] 린킨 파크 < Hybrid Theory >

[장준환 기자]

 < Hybrid Theory > 앨범 커버
ⓒ Linkin Park
 
다들 MP3 플레이어와 헤드폰을 들고 다니던 2000년대 초반. 이때 격변의 사춘기를 보낸 이에게 음악적 우상을 물어보면 항상 회자는 몇 팀이 있다. 그린 데이(Green Day)와 뮤즈(Muse), 그리고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이름이 바로 린킨 파크(Linkin Park)다. 이 밴드들을 통해 록의 세계에 입문했다 증언하는 이가 적지 않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지만, 강도로 따지면 승자는 단연 린킨 파크다. 그린 데이가 농담과 진지 사이 팝 펑크의 유쾌함을 입혔다면 뮤즈는 얼터너티브 특유의 진한 몽환경을 그린다. 하지만 린킨 파크의 경우는 다르다. 비관적인 노랫말 아래 절규하듯 스크리밍을 내뱉고 광폭한 밴드 사운드를 사방으로 뿜어낸다. 직진밖에 모르는 밴드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조금은 다가가기 어려워 보인다. 왠지 모르게 무서운 아저씨들이 즐길 것 같은 이미지가 앞선다. 그러나 데뷔작 < Hybrid Theory >가 등장과 동시에 전 세계를 휘어잡고, 대중음악의 메카 미국에서만 그해 1200만 장 판매고를 기록하며 '2001년 가장 많이 팔린 앨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대가 원하던 완벽한 결과물

2000년으로 돌아가 보자. Y2K는 강성의 에너지를 요하던 시기다. 새천년을 맞이한다는 희망과 동시에 맞닥트린 적 없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사회는 불안을 대변할 이들을 원했고, 게다가 휙휙 변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마주한 청소년에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가 더더욱 필요했다.

그런 상황 속 < Hybrid Theory >는 시대가 원하던 완벽한 결과물이었다. 심장을 후벼파는 파워 드러밍과 몸을 전율케 하는 기타 사운드가 오가지만 결코 지저분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시종일관 우울한 분위기는 마치 디스토피아를 닮았고,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떠오르는 앨범 커버 역시 세기말 감성과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명확한 후렴과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대중적 포인트가 분명하다. 서정성과 공격성을 버무린 '메탈 스타'의 등장이었다.

배경을 파헤친다면 더 흥미로운 작품임을 알게 된다. MTV를 주축으로 1980년대 상업적 인기를 끈 팝 메탈은 이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의 득세로 점차 쇠퇴의 길을 걷던 와중이었다. 물론 그 흐름을 계승하고 변형과 실험을 더 해 새로운 분파를 이끌어간 선구자가 많았지만, 어디까지나 비주류 팬덤과 평론가의 지지만을 받던 찰나였다. 사회 비판을 주제로 하거나 잔학하고 엽기적인 콘셉트를 내건 팀이 많았기에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힘든 부분도 있었다.

랩과 메탈이 결합된 일명 '랩 메탈'을 전면에 내건 < Hybrid Theory >는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하이브리드'를 통해 혁명을 시도했다. 먼저 밴드에 디제이 멤버를 추가해 'Cure for the itch'와 같은 전자 요소가 강한 곡과 화려한 스크래치 등 턴테이블을 이용해 광활한 사운드 스펙트럼을 창출했다. 또한 스크리밍을 겸임하는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아름다운 미성의 소유자라는 반전도 남달랐다. '악마처럼 비명 지르고 천사같이 노래 부른다'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만큼, 이들을 대표하는 곡 'In the End'만 들어봐도 그 선악을 오가는 목소리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로 인해 메탈은 다시금 2000년대 새로운 주류 문법 중 하나로 올라설 수 있었다. 등장 당시 이들은 헤비니스 순혈주의자에게 변종이라 비난 받았지만, 결국 업계를 뒤흔들며 장르에 영광을 가져다 준 구원자로 재림했다. 록 마니아 사이에서 린킨 파크의 초기작 중 선호도를 따질 때 정규 2집 < Meteora >도 결코 빠지지 않는 웰메이드 명반이지만, 1집이 결국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징성과 파격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이 모여 멤버를 모아 출발한 아마추어 학생 밴드였기에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침실에 모여 녹음을 하던 나날이 계속됐다.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제작한 데모 테이프마저 아무리 음반사에 돌려도 매번 거절 당하기 일쑤였다. 쏟아부은 만큼 좌절도 컸기에 급기야 몇몇 멤버가 떠나며 해체 직전에 처하기도 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보컬로 체스터 베닝턴을 새로 영입,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따낸 린킨 파크는 소속사와의 숱한 갈등에도 굴하지 않고 심지를 굳힌 야심작 단 한 장으로 회심의 일격을 날리는 데 성공한다. 그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는 충분했다. 'One Step Closer', 'Crawling', 'A Place for My Head'는 물론 스포티파이 최초로 스트리밍 10억 회를 넘긴 뉴 메탈 트랙 'In the End'까지. 여러 히트곡이 이 단 한장에서 배출된 것이다.

지난 2017년, 체스터 베닝턴이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많은 추모의 물결이 일었던 것을 기억한다. 곳곳에서 'In the End'가 울려퍼졌다. 스스로를 믿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았던 밴드, 그리고 가정 폭력과 마약 문제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많은 이들의 상처를 안고자 했던 체스터 베닝턴.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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