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종자 회사의 수십억 제안 거절한 야생콩 연구자

주간함양 최학수 2024. 6. 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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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농업에 토종종자 생태계 마련하기 4] 야생콩 7000점 연구자, 정규화 교수

[주간함양 최학수]

토종종자는 오랫동안 농민들의 손에 의해 최소 30년 이상 이 땅에 심겨진 종자를 말한다. 매년 심겨지며 조금씩 그 땅의 생태계에 맞춰서 적응해 온 토종종자는 우리 삶의 터전과 유기적으로 공명하는 존재이자 농민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최근 유전자변형 농수산물(GMO)과 종자주권 등의 이유로 이미 많이 주목받은 토종종자가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역 풍토에 맞는 다양성 확보를 통해 병해충 및 환경변화에서 생존율이 뛰어난 토종농작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함양군은 농업이 주요 생산기반인 지역으로 농업계획이 중요하다. 경상남도를 통해 함양군도 토종농산물 소득보전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저변확대에 한계가 있다. 농업 문화유산인 토종종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토종종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만든 토종종자 생태계를 알아보고 함양농업의 미래를 고민해본다. <기자 주>
 
 정규화 교수
ⓒ 주간함양
 
다국적 종자회사의 40억원 제안 거절한 교수

"과거에 다국적 종자 회사가 나한테 요구했던 것은 공동연구가 아니고 전부 넘기는 조건이었지. 그거는 허락이 안 돼. 법률적으로도 안 되기 때문에 원칙에 따라서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지. 하지만 야생의 자원이기 때문에 누가 알아? 좀 안 좋은 마음을 먹으면 콩을 가져가 버려도 아무도 모르겠지.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거절을 했지. 그 외에도 많이 거절을 한 경우가 있었지."

현재 퇴직 후 진주시 명석면의 밭에서 콩을 재배하고 있는 전남대학교 정규화 석좌교수. 정규화 교수가 다국적 종자 회사의 수십억 제안을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 사건에 대해 그저 "원칙에 따라 거절했을 뿐"이라고 쿨하게 매듭 짓는 정규화 교수. 그렇게 지금까지 야생콩 7천점을 지키게 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다른 박사들은 돈도 많이 벌고 편하게 지내려고 다 연구소에서 유전공학을 하더라고. 그런데 내가 보니까 좋은 콩을 얻으려면 그 소재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야생콩인 거고 한반도가 자생지인 콩은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 거지. 그래서 농대 출신같이 이렇게 일을 하게 된 거지. 앞으로도 자기 돈 들여서 하는 사람이 있겠어?"

대학에서 연구비를 받아도 DNA를 다루는 연구를 하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정규화 교수의 연구는 1년 종일 밭을 다녀야 하는 연구였고 학생들의 원성이 잇따랐다. 정규화 교수는 끝에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건데. 그래도 해야지, 다른 교수들이 안 하는데"하고 장난스레 덧붙였다.

장난이라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심각하다. 정규화 교수의 콩이 조금씩 소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화 교수는 여태 사비로 계속 유지를 해왔지만 어쩔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다.

"야생콩만 7천점으로 보면 되고 두류로 하면 1만점이 넘어. 그걸 키우려고 해봐라. 돈이 얼마나 들어가겠나? 없어지는 건 아까운데 이제 없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거지."

정규화 교수는 현재 전남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홍콩 중문대학, 파키스탄 건조농업대학과 러시아, 베트남의 대학에 겸임교수로 교류하며 인적, 재정적 도움을 일부 받고 있지만 그마저도 부족하다.

"유전자원이라는 건 한 번 사라지면 이 지구상에서 그냥 없어지는 거야. 다시 복구가 절대 될 수 없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거든. 안타까운 거지."

토종콩과는 다른 유전자원, 야생콩
 
ⓒ 주간함양
 
우리가 키우는 작물은 재배종, 재배종 안에 토종이 포함된다.

"토종이라고 하는 건 그냥 키우고 있으면 토종이야. 오랫동안 키우면 토종이라고 해. 토종 토마토도 있어. 야생은 본래 근본적으로 자생하는 걸 야생종이라고 부르지."

야생종 중 작물이 된 건 야생근연종이라고 부른다. 야생근연종은 개량종이 아닌 원종이기 때문에 육종의 소재로 쓰인다. 따라서 정규화 교수의 야생콩 정보는 콩 육종에 있어 필수적인 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유전자원을 교수 개인이 지켜나가게 된 이유는 정부 정책에 있다. 정부 정책은 콩을 수입하는 것으로 맞춰져 있다는 게 정규화 교수의 설명이다.

"콩 수입에 집중하니까 우리나라 콩 자급률이 높아질 수 없지.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로 좋은 콩을 개발하겠다고 하면 내 돈만 소모하게 되는 거야."

70세 고령의 나이에 접어든 정규화 교수는 이제 다른 나라 종자회사들하고 일을 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적합한 회사를 찾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많은 수십억을 들여서 할 수가 없어, 할 사람도 없고. 지금 진주로 옮겨서 그렇지 학교에서 종자를 유지할 땐 매년 1억에서 1억 5천이 들어가. 내 월급보다 더 들어가는 돈이지. 그걸 수십년 했는데 남아 있을 게 있나? 아무 것도 없지."

정규화 교수의 콩은 한반도에서 자생한 야생콩이기에 가급적 외국의 간섭 없는 육종 개발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콩을 제일 많이 생산하는 북미와 남미의 학회에 가서야 대우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그런 대우를 못 받지"라고 웃으며 말하는 정규화 교수의 말은 블랙코미디다.

유전자원의 중요성은 청양고추를 통해서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인의 매운맛으로 표현되는 청양고추도 실은 외국계 회사 품종으로 일부 로열티를 지불하며 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래 농업에 대한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잘 안 통해. 아주 가까운 것만 보기 때문이지."

농업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정규화 교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농업은 그냥 암담하다고 보면 되지. 거의 큰 변화가 없을 거야, 앞으로도."

부정적인 견해로 운을 띄운 정규화 교수는 우리나라 농업 정책과 식량 자급률 문제를 꼬집었다.

"지금 정부가 스마트팜을 권장하고 있지만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농업은 일반적인 농업이 아니야. 스마트팜 시설에 지원을 하는 것보다는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수매해주고 농민 생활을 안정시켜주는 정책이 필요하지. 그게 뭘 의미하느냐면 국민들이 먹고 사는 식량을 안정적으로 책임져주는 사람들을 돕는 거야."

농산물 수매는 식량 자급률과 직결된다. 1970년 79.5%이던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32%로 해마다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농산물 수매로 표현되는 농민 주권 혹은 농민 처우 개선은 식량 자급과 맞닿아있다. 미래를 대비해 농민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야한다는 것이 정규화 교수의 주장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상기후 등 급변하는 상황 속 식량 인플레이션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 식량안보지수(GFSI)는 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에 해당한다. 국제 식량 가격이 요동치면 물가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른 거 없어. 국민 생활 필수품. 먹고, 입고, 자는 거. 그게 저렴한 나라가 선진국이지. 정세가 급변해서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 어떡할 거야. 그런 면에서 우리 농업은 미래를 생각해야 해."

콩 심은 데 콩 나는 정규화 교수 밭
 
ⓒ 주간함양
 
지난 5월 20일 정규화 교수의 밭에서 홍콩 중문대학교 박사과정의 두 연구원과 대학교수와 연구소 학생과 함양토종씨앗모임 심영지 대표, 본지 최학수 기자 등 9명이 모여 콩 심기를 시작했다. 흙에 구멍을 내고 한 칸에 콩 두 알씩. 세로줄이 넘어갈 때마다 다른 콩으로 바꾼다. 그렇게 모종판 하나에 야생콩 열두 점을 채운다.

콩을 종자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5년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밭에 심어 증식을 해야 한다. 물론 야생종의 특성을 고려해 농약과 비료 없이 자연 그대로 키운다. 이걸 30여년 반복해온 정규화 교수는 어느덧 칠순을 넘겼다.

이렇게 모은 콩은 전부 전라남도 일대 섬 등 한반도 전역을 훑으며 수집한 야생콩이다. 모은 씨가 발아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GPS 좌표 정보까지 데이터로 확보했다.

"이렇게 작은 콩을 먹어보겠다고 하루종일 물에 불려서 밥 짓는 데 넣었는데 콩이 자갈처럼 딱딱해서 다 버렸어요", "이 콩으로 콩나물을 해서 먹으면 먹을 수는 있는데 거무튀튀해서 안 예뻐요. 줄기도 얇고요" 역시 단순반복 노동 중에는 잡담이 최고다.

야생콩과 육종된 재배콩을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야생콩은 제대로 먹기도 힘든데 비해 재배콩은 낱알도 크고 빨리 성장하고 단백질도 많다. 하지만 재배콩은 그런 특성을 얻게 되면서 잃은 정보들이 많다. 유전적인 다양성이 낮아진 셈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높은 야생콩은 어떤 성질을 갖고 있을까? 정규화 교수에게 물었다.

"한 개만 이야기 하자면, 우리가 노인이 되면 다리에 힘이 빠져버리잖아. 근육이 약해져서 그런 거야. 야생콩에는 근육의 퇴화를 막아주는 물질인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있는 거야. 분명 재배콩은 야생콩에서 발달된 건데 이런 성분은 발견되지 않지. 참 재밌더라고."

현재 연세대학교의 도움을 받아 유전자원 분석을 마친 콩은 약 500점 정도다. 500점 분석을 위해 사용된 연구비용은 대략 10억원이다. 

정규화 교수는 "콩이 세계인의 단백질을 최소 30% 이상 책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콩은 굉장히 중요한 작물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어떤 콩을 만들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정규화 교수는 "콩은 수요가 많다보니 목적이 다르다. 콩으로 두부나 비건 콩고기를 만든다고 하면 무조건 단백질 함량을 높게 콩을 해야 하고, 갱년기를 건강하게 보내는 기능성 콩을 만든다고 하면 이소플라본 성분이 포함된 콩을 개발해야 한다. 콩은 식품도 많이 쓰이지만 사료, 기름, 연료, 잉크나 페인트 소재, 섬유로도 쓰일 수 있으니 정말 다양하다"며 "용도가 다양한 만큼 목적에 따라 만들 콩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화 교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콩을 심었다. 그렇게 유지한 게 30년이 넘었다. 기후위기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식량주권, 종자주권의 중요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문제들은 해를 거듭하며 더 중요해질 것이다. 정규화 교수의 진주 콩밭에는 올해도 모종이 심겨지겠지만 야생콩은 이미 조금씩 소실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새 수많은 해법과 대책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HBO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처럼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기 전에 문제 대비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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