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사과' 최태원 "하지만 6공 후광은 사실 아니다"
[선대식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최근 재판 현안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 SK |
17일 오전 자신의 이혼소송과 관련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90도로 몸을 숙이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그는 항소심 판결에 치명적인 회계 오류와 '6공화국의 후광' 등 사실이 아닌 주장이 담겨있다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과 재산분할 1조 3808억 원을 지급하라는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온 후, 최 회장이 이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 취재진 앞에 선 것은 처음이다.
예고 없이 기자회견장 찾은 최 회장 "SK 역사 전부 부정당해"
당초 이형희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과 최 회장의 법률대리인 이동근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등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항소심 판결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예고했다. 이형희 위원장의 발언으로 기자회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찰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장으로 입장했다.
그는 "개인적인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사과드린다"라고 말한 후, 90도로 몸을 숙였다. "제 생각엔 한번은 여러분 앞에 나와서 직접 제가 사과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되어, 이 자리에 이렇게 섰다"라고 했다.
최 회장은 "사법부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 상고를 하기로 결심했다"면서 "(그 배경으로) 첫 번째로는 재산분할과 관련해서,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 그 오류는 주식의 분할 대상이 되는지 또한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그 전제에 관한 치명적이고 큰 오류라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고를 하게 된) 또 하나의 커다란 이유 중 하나는 'SK의 성장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서 이뤄졌다', 또 6공화국의 후광으로 SK 역사가 전부 부정당하고 '그(6공) 후광으로 사업을 키웠다'하는 (항소심) 판결의 내용이 존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이는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저뿐만 아니라 SK그룹의 구성원 모두의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됐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며 "부디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바라고, 또 이를 바로잡아주셨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 있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차 사과하고 고개를 숙인 후 "앞으로 판결과 관계없이 제가 맡은 소명인, 기업 활동을 충실히 잘해서 국가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2개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중에 하나는 대법원에서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그런 위기로 발전되지 않게 예방해야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막을 역량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라고 답했다.
▲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최근 재판 현안 관련 SK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
ⓒ SK |
최 회장 퇴장 이후, 이형희 위원장은 "(판결문에 언급된) 300억 비자금이 들어왔다는 내용이 팩트로 치부되고 있다. 과연 그게 맞는 것인가. 그러한 부분은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 메모지에 나와 있는 비자금 내역은 1995년 수사 당시에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SK는 6공 특혜로 성장한 기업이 절대로 아니다. '6공 특혜' 뉴스는 해묵은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5공, 6공이 지난 다음에 그 정부를 굉장히 칭찬하고 그 정부 일원이었던 것이 다음 정부에서 굉장히 큰 뒷배가 되고 힘이 되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면서 "후광으로 작용했는지, 굉장히 큰 멍에로 작용했는지 다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4년 SK의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를 두고 "5·6공 비리 청산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비등한 때였다. 그때 경쟁입찰로 들어갔다. 낙찰받지 못한 다른 입찰자 가격과 비교해보면 약 2배의 금액을 넣고 인수했다. 과연 특혜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동근 변호사는 항소심 판결에 중대한 회계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SK그룹의 지주사인 SK(주)의 모태가 되는 대한텔레콤(현 SK C&C) 주식 가치를 1000원이 아닌 100원으로 잘못 계산했고, 이 때문에 SK(주)가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돼 막대한 재산분할금액이 산정됐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최 회장이 자수성가형 사업가가 아닌 승계상속형 사업가라면서, SK(주) 주식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994년(최태원 회장의 최초 주식 취득 시점), 1998년(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무렵), 2009년(상장 시점)의 대한텔레콤의 주당 가치를 계산했다. 1994년 8원 → 1998년 100원 → 2009년 3만5650원이었다. 이에 따르면 최종현 선대회장 때(1994~1998년) 12.5배 상승했고, 최태원 회장 때(1998~2009년)엔 355배 상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의 기여도가 큰 만큼 부부공동재산으로서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봤다.
하지만 이 변호사에 따르면, 1998년 주당 가치는 100원이 아닌 1000원이었다. 당시 주당 가격은 5만 원이었는데, 두 차례 액면분할(총 1/50)을 감안하면 주당 가치는 1000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종현 선대회장 때는 125배 상승했고, 최태원 회장 때는 35.5배 상승한 것으로 계산된다.
이 변호사는 "항소심에 따른 (최 회장이 보유한) SK(주) 가치가 3조 원, SK실트론까지 포함하면 3조 7000억 원"이라면서 "(대법원이) 이를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받은 고유재산으로 본다면, 1심처럼 SK(주)는 재산분할대상에서 빠질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도에 따라 (재산분할) 금액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 쪽은 이번 주에 상고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노소영 관장 측 "사법부 방해 시도 유감... 차라리 판결문 공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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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 관장 쪽 이상원 변호사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최 회장 쪽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항소심 법원의 논지는 원고가 마음대로 승계상속형 사업가인지와 자수성가형 사업가인지를 구분 짓고 재산분할법리를 극히 왜곡하여 주장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SK C&C 주식 가치의 막대한 상승은 그 논거 중 일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원고 주장에 의하더라도 여전히 SK C&C 주식 가치가 막대한 상승을 이룩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결론에는 지장이 없다. 일부를 침소봉대하여 사법부의 판단을 방해하려는 시도는 매우 유감"이라면서 "차라리 판결문 전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여 그 당부를 판단토록 하는 방안에 대하여 최 회장이 입장을 밝히기를 희망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최 회장 개인의 송사에 불과한 이 사건과 관련하여, SK그룹이 회사 차원에서 대응을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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