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백 무혐의, 어느 권익위 고위 공직자의 가상 독백
[이광철 기자]
▲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3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제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려 꽃다발을 받고 있다. |
ⓒ 연합뉴스 |
1. 프롤로그
지난 6월 10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른바 '김건희 여사 명품 수수 사건'에 대해 '종결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권익위는 세상 사람들이 예측한 바에서 단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방식(72초 브리핑)과 결론(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의 제재 규정이 없어 종결 결정)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사건의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쯤 권익위의 72초 브리핑에 관여한 누군가는 이렇게 읊조리면서 자조적인 독백을 하고 있지 않을까? 때로는 건조한 서술식 문장보다, 주술 관계도 불명확한 비문 같은 문장들이 사안의 본질을 더 명료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지금쯤 그 누군가가 읊조리고 있을지 모를 독백이 그럴 수 있겠다. 다음은 가상으로 써 본 그의 독백이다.
2. 가상의 '독백'
아! 미치겠다.
내가 명색이 권익위의 고위 공무원인데, 이 뻔한 걸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리 종결 처분해 버렸으니... 집으로 가는 길이 무겁다. 이대남인 아들놈이나, 이대녀인 딸 얼굴 보기가 무섭다. 지난 총선 때 그래도 이 정부의 대통령이 속한 정당 좀 찍어주면 안 되나 하고 넌지시 아들, 딸한테 얘기했다가, '개박살' 날 뻔했다. 젊은 층에게 윤통은 더는 기대를 회복하기가 어려운 듯하던데, 이번 72초 발표를 보면 뭐라고 할까? 72초 브리핑 본 친구들은 또 어떨까? 대놓고 말은 안 해도 혀를 차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 괴롭다. 아냐! 아냐! 난 잘못한 것 없어. 어차피 우리가 문제없다고 해도 이원석 검찰총장도 김건희 여사 조사한다고 했고, 국회도 특검이 들썩들썩하고 국민이 김건희 여사 용서하지 않을 건데, 우리 권익위가 무슨 힘이 있어. 어쩔 수 없었어. 김건희 여사가 향수 받고 명품 가방 받은 적이 없다고 우리가 진실을 감추길 했어, 관련 공무원들 강압하기를 했어? 우리는 잘못이 없어. 우리가 뭐 검찰도 아니고.
▲ 국민권익위원회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했다는 내용의 비위 신고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고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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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같은 인간이 지배하는 검찰. ... 그들은 하나같이 정의를 말하면서 법을 집행하지만, 법의 정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권력만 추구하는 바리새인 율법론자, 법기술자들."
그런 분이 지금 권익위에 와서 저러고 있는데, 솔직히 찔리지 않을까?
▲ 국민권익위원회 : 공직자등의 배우자가 궁금해 하는 청탁금지법(개정 시행령 반영)사이트 내 첨부파일. |
ⓒ 국민권익위 |
참 한심한 것이, 그 환한 대낮에 대통령 영부인이라는 사람이 뭐 그런 걸 받고 그러나? 그까짓 향수·명품백 하고 대통령의 권위를 바꾼 것 아닌가?... 아, 나도 윤 대통령 뽑은 사람인데, 내가 다 창피하네. '대통령과 시원한 맥주 한 잔 했으면 좋겠다'는 카톡에는 시큰둥하다가 명품 선물 사진 찍어 보내면서 일정 기다린다고 하니 답장 와서 약속 잡고,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근데 더욱 한심한 건 도대체 왜 걸리냐고. 정말 짜증나게. 왜 나를, 우리 권익위를 오명의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하냐고?
그리고 기왕 걸릴 거면 영상으로 찍히지나 말든가. 영상만 안 찍혔으면 "법과 원칙" "관련자들의 진술 등 엄격한 증거판단" 같은 멋진 말 사용하면서 우리도 사건 묻어줄 수 있지 않았겠냐고? 이건 뭐 영상이 찍히고 그걸 전 국민이 봐 버렸으니 우리보고 뭘 어쩌라는 거냐고? 정도껏 해야 봐 줄 것은 봐주고, 묻어줄 것은 묻어주지.
그러고 보면 도대체 청와대는 왜 나와 가지고 이 난리를 스스로 자초하는지. 청와대에 있었더라면 그 목사가 몰카 장착 시계를 반입조차 못 했을 것 아닌가. 청와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윤 대통령도 청와대 있었으면 술을 마시든 뭘 하든 지금처럼 조롱거리는 안 됐을 거잖아.
▲ 2022년 9월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 샤넬백을 받는 장면이 <서울의소리>에서 공개됐다. |
ⓒ 서울의소리 |
정권 바뀌면 오히려 김 여사가 걱정이다. 물론 윤 대통령도 지금 민심이 흉흉하기는 한데, 직선 대통령이고, 검사 출신이니 자기 방어는 할 거고, 또 고생하더라도 어찌 버티긴 할 텐데. 김 여사는 정말 민심이 장난 아닌데. 모르긴 해도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더 세게 할퀴고 등에 칼 꽂을 수도 있다. 무수한 돌팔매를 어찌 견딜까?
윤 대통령도 그래. 하는 거 보면 너무 어이가 없어. 대선후보 시절 자기 입으로 "과거의 어떤 정권도 이런 짓을 못했다. 겁이 나서. 여기는 겁이 없다. 보통은 겁나서 못 한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진짜 겁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은 도대체 뭔가? 2013년에 자기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면서 수사외압을 버텼으면서 말이야. 박정훈 대령이나 그때 윤석열 검사나 똑같은 거 아닌가? 근데 박정훈 대령한테는 왜 저러는데?
하~~ 지금 내가 누구 걱정할 때가 아니지. 혹시 나중에 나도 윤석열 정권 적폐 청산 대상자로 지목되고, 직권남용으로 구속되는 거 아닐까? 내가 사건 묻었다고?
이제 어떡하나? 이 정권 몰락하면 나도 끝일 텐데, 이 정권 몰락하면 제일 먼저 검사들부터 나를 물어뜯을 텐데. 아예 지금 미리 사표 내고 양심선언 할까? 아, 정말 미치겠네.
▲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투르크·카자흐·우즈베크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16일 새벽 경기 성남 서울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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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명품 수수 사건'에 있어서 이제 권익위의 단계는 지났다. 김건희 여사나 윤석열 대통령도 설마 권익위 결정으로 이 문제가 최종적이고, 종국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처음 영상이 공개됐을 때 사실을 시인하고 유감 표명했으면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가 다소 정치적 상처를 입었을지라도 이 정도로 사건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김건희 여사 명품 수수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 정부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하는 비수가 돼버렸다.
권익위의 이번 결정은 지금은 김건희 여사나 윤석열 대통령을 흡족하게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지금 권익위의 종결 처분은 김건희 여사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오히려 이번 결정이 그렇지 않아도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불에 부어진 기름이라는 점을.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문재인 정부 민정비서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여해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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