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타샤 튜더 | “오후의 티타임만큼 즐거운 시간은 없을 것”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4. 6. 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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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요.”

“불행하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요.”

“난 이번 생이 바랄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어요.”

온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91세 할머니 타샤는 이렇게 말한다. 순간 전율이 인다. 내가 그 나이가 됐을 때 나도 저리 고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해맑게 저리 말할 수 있을까?

2017년 개봉한 영화 ‘타샤 튜더’는 타샤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에 매료된 마츠타니 미츠에 감독이 타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취재 허락을 구하고, 무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타샤 튜더’라는 인물을 집중 조명해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지만 영화 같고, 영화면서 시 같은, 그저 ‘평온하고’ ‘아름답다’ 라는 두 단어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듯한 그런 독특한 영화다.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면서 삽화가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녀는 30만 평 대지에 천국 같은 정원을 일군 가드닝의 대가로 더욱 유명해졌다.

버몬트주 30만평에 정원 가꾼 타샤 튜더
정원 한편에서 차 마시며 ‘정원멍’ 즐겨
타샤는 1915년 미국 보스턴에서 조선 기사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졌고, 열다섯 살에 학교를 그만둔 뒤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동물을 기르고 화초를 가꿨다. 스물세 살에 출간한 첫 그림책 ‘호박 달빛’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코기빌 마을축제’ 등 100여 권의 그림책을 내면서 그림책 작가로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이혼한 후 네 아이를 혼자 기른 타샤는 쉰여섯 살에 오랫동안 모은 인세 수익으로 버몬트주 산골에 땅을 마련하고 오랫동안 소망해온 정원을 일구기 시작했다. ‘타샤의 정원’으로 유명한, 바로 그 정원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정말 그 시대의 옷과 가구와 그릇을 수집하고 직접 사용했다. 그녀가 수십 년간 모은 약 200여 벌의 의상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830년대 의상 컬렉션으로 불리며 록펠러재단이 운영하는 윌리엄스버그 박물관에 기증됐다.

“예쁜 찻잔과 따뜻한 차맛도 좋고

앉아서 정원을 즐기는 것도 좋아요.”

타샤는 정원 가꾸기 못지않게 자신이 가꾼 정원 한편에서 차를 마시며 ‘정원멍’ 하는 것도 좋아했다. 타샤는 늘 손발이 거칠어지도록 흙일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빅토리아 시대 귀부인처럼 자신을 대접했다. 홀로 티타임을 즐길 때도 들꽃과 손수 만든 양초로 방을 장식하고, 19세기풍 드레스를 입고, 200년 전 찻잔에 직접 만든 허브티를 따라 마셨다.

영화 속에서 타샤가 테이블에 찻잔을 주르륵 세팅해놓고 차를 따라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빅토리아 시대를 좋아한 타샤 아니랄까 봐 진짜 그 시절 유럽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의 중국 청화 찻잔을 사용한다. 청화 찻잔에 손잡이가 없고 소서라 불리는 찻잔 받침이 유독 오목한 형태다.

타샤가 즐겨 사용한 찻 잔 세트는 찻잔 받침이 오목하고 손잡이가 없는 형태다.
중국으로부터 차가 수입돼 들어오면서 유럽인들은 중국인이 차를 우리고 따라 마시던 중국 다구도 함께 들여오기 시작했다. 중국 다구는 여러모로 신기한 물건이었다. 무엇보다 투명하고 밝은 빛을 내는 데다,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는가 하면, 얇으면서도 단단한 자기 재질이 유럽인을 매료시켰다. 게다가 ‘코발트’라는 안료를 사용했다는, 푸른색의 그림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청화백자’는 신비롭기까지 했다.

최고 도자기 브랜드를 다 가지고 있는 유럽에서 왜 중국 청화백자에 열광했을까? 마이센, 웨지우드, 빌레로이앤보흐, 로얄코펜하겐 등 지금은 명품 도자기 브랜드가 즐비한 유럽이지만, 유럽에서는 18세기까지 자기를 만들지 못했다. 1708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30㎞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 마이센의 ‘알브레 히츠부르크 성’에서 뵈트거라는 연금술사가 만든 자기가 최초의 유럽산 자기로 알려져 있다.

손잡이 없고 크기 작은 중국 찻잔
“찻잔 받침 오목하게” “손잡이도 만들어줘요”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가 합쳐진 단어다. 800~1000℃ 온도에서 구운 것을 ‘도기’, 1100~1500℃에서 구운 것을 ‘자기’라고 한다. 더 낮은 500~800℃에서 구운 그릇은 ‘도기’도 아닌 ‘토기’다. 자기는 도기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웠으니 그만큼 더 단단하다.

토기와 도기는 만들기 쉽다. 그러나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15세기까지도 중국과 한국이 유일했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데려간 도공들 덕분에 16세기들어 처음으로 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차가 막 유럽에 들어올 무렵, 유럽에서 부자는 은이나 동으로 만든 그릇을 썼다. 은은 색이 잘 변하고 동은 쉽게 녹이 나 관리가 어려웠다. 값도 비쌌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기나 나무로 만들어진 식기를 썼다. 나무그릇은 투박하고 도기는 물이 스며들며 튼튼하지 않았다.

이후 차라는 신문물이 들어오고 대유행이 시작됐는데 이 차를 마시기에 은도, 동도, 나무도, 도기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은이나 동 식기에 뜨거운 차를 부으면 너무 뜨거워 잡기도 힘들었고, 도기는 차의 뜨거운 온도를 버티지 못해 터져 나가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귀족들이 나무식기에 차를 마시기는 너무 없어 보였을 터. 그런 상황에서 차를 부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중국산 자기를 만났으니 ‘한눈에 뿅~’ 갈 수밖에.

유럽 귀족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 앞다퉈 중국 자기를 사들였지만, 그런 자기 다구에 두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잔이 너무 작고 심지어 손잡이가 없다는 것. 또하나는 가격이 어마무시하게 비싸다는 사실이었다.

비싼 것보다 잔이 작고 손잡이가 없는 게 더 문제였다. 끽해 봐야 100㎖ 크기 작은 잔에 100℃ 뜨거운 찻물을 가득 부으면 찻잔을 들기조차 힘든 경우가 다반사였다. 고민하던 유럽인들은 찻잔 받침에 차를 따라놓고 ‘후후’ 불어 마시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찻잔 받침에 차를 따르기 좋게 더 오목하게 만들어 달라고 중국에 ‘맞춤 주문 생산’을 요청했다. 그다음에는 찻잔에 손잡이도 붙여달라고 요구했다.

중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주문하는 유럽인 기호에 맞춰 마치 수프볼처럼 오목한 형태의 찻잔 받침을 만들어줬고, 손잡이 달린 잔도 만들어줬다. 타샤의 찻잔은 손잡이를 붙이기 이전, 찻잔 받침만 오목하게 만들던 시절의 다구임을 알 수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커피를 마시는 여인(The Woman Taking Coffee)’ 찻잔 받침에 커피를 따라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손잡이 있는 찻잔을 쓰면서도 습관처럼 찻잔 받침에 차를 따라 마시곤 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점. 유럽인들은 찻잔이 뜨겁다고 호들갑 떨며 난리였는데, 중국인은 찻잔이 뜨겁지 않았을까. 중국인이 즐겨 마신 차와 유럽인이 좋아한 차가 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차의 종주국이면서 한때 차로 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중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차는 무엇일까. 답은 녹차다. 2020년 기준 중국 차 생산량 중 녹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61.7%다. 소비 비율은 50%가 넘는다.

생산과 소비만 많이 한 게 아니다. 비싸기도 비싸다. 최고급 녹차는 모든 차 중에 가장 비싼 차로 꼽힌다. 중국은 매년 10대 명차를 선정해 발표하는데, 10대 명차 중 늘 7~8개가 녹차로 채워진다. 육안과편, 서호용정, 벽라춘, 황산모봉, 태평후괴, 안길백차, 은시옥로, 산양모첨 등이 10대 명차에 단골로 포함되는 녹차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그랬다. 중국인이 주로 마시는 차는 녹차였다. 녹차는 100℃ 물로 우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한소끔 식은 80~90℃ 물로 우려낸다.

반면 영국인을 비롯한 서양인이 주로 마신 차는 홍차였다. 산화를 일절 시키지 않은 녹차는 찻잎부터 녹색이고 우려낸 차의 색도 연노란색인 반면, 완전 산화를 시킨 홍차는 찻잎 색이 검은빛에 가까울뿐더러 차의 색은 짙은 갈색이다. 홍차는 무조건 100℃ 물로 우려야 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 우린 녹차는 손잡이 없는 잔에 따라 마셔도 덜 뜨거운 반면, 팔팔 끓는 100℃ 물로 우린 홍차는 손잡이 없는 잔에 따라 마시면 훨씬 뜨거웠을 터. 게다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차를 물처럼 마신 유럽인들이 100㎖ 정도 작은 잔에 차를 마시다 보면 감질났을 터다. 크기도 커지고 손잡이도 붙인 홍차잔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

타샤 튜더의 그림책 ‘타샤의 그림정원’ 中 한 장면. 차 마시기를 좋아한 타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손잡이 없는 오래된 중국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신 타샤는 그러나 홍차보다는 허브차를 즐겨 마셨다. 정원 곳곳에 카모마일 등 허브를 심어놓고 허브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셨다. 카모마일은 실제로는 차가 아니다. 학술적인 정의에 기반하면 그야말로 차나무 잎으로 만든 것만 ‘차’ 라고 부를 수 있다.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등의 6대 다류다. 허브 잎은 차나무 잎이 아니기 때문에 허브는 차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차를 대신한다는 ‘대용차’에 속한다.

차든 대용차든, 무슨 상관이랴. 누리고, 행복을 느끼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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