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이후 13년… 부부, 다시 현장서 마주보다
“‘원더랜드’는 인공지능(AI)을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들과 달리 진실과 희망, 실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을 그렸다. 생각하게 하고 내면을 뜨거워지게 하는 작품을 선호하는데 그런 지점에서 김태용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늘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기대하게 된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탕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2011년 영화 ‘만추’의 주연 배우와 감독으로 만난 탕웨이와 김 감독은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원더랜드’(포스터)를 통해 10여 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그사이 부부가 됐고,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부모가 됐다.
영화는 소통과 그리움,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원더랜드는 만날 수 없게 된 가족이나 연인을 AI로 복원해 영상통화할 수 있도록 개발한 서비스다. 탕웨이는 나이 든 어머니와 어린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난 바이리 역을 맡았다. 초반 몇 장면을 제외하면 실존하는 인간이 아닌 AI 바이리를 연기한 셈이다.
탕웨이는 “AI 바이리는 부정적인 정서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화가 나거나 슬픈 상황에 처한 바이리의 감정은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가상 세계에 있는 인물이기에 세트장의 그린 스크린에서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하는 장면도 있었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어서 어렵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부터 김 감독과 탕웨이는 많은 생각을 주고받았다. 탕웨이는 중앙희극학원에서 연출을 공부했다. 탕웨이는 “세상이 끊임없이 변했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촬영을 마칠 때까지 이야기가 계속 발전했다”며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던 것들이 가능해지기도 하면서 거기에 따라 인물 표현도, 인물 관계도 달라졌다. 계속 연구하고 캐내는 과정을 지켜봤다”고 했다.
탕웨이와 김 감독 부부는 호기심과 집요함이 닮았다. 탕웨이는 “김 감독은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다. 어느 한 가지를 파고들기 시작하면 궁금증의 범위가 넓어진다”며 “나도 그런 사람이라서 우리는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공통된 화제, 재밌는 이야깃거리를 찾으면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대화하고 탐구했다”고 말했다.
영화가 AI를 다룬 만큼 이번에 김 감독의 탐구는 기술과 과학 영역에서 이뤄졌다. 김 감독은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영화가 아니라 AI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감정을 얘기하는 관념적인 영화”라고 했지만 이야기의 개연성을 위해 과학 자문은 필수적이었다.
김 감독은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등과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촬영할 당시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지만 후반 작업이 길어지다 보니 발달한 기술을 적용할 수 있게 된 부분도 있다”며 “공유가 연기한 성준 캐릭터의 목소리 일부는 생성형 AI인데, 최근 한 달 새 구현할 수 있게 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래희망이 과학자였을 정도로 기술에 관심이 많다. 어릴 때 영어를 정말 못하고 수학을 정말 잘했는데 영어 쓰는 사람이랑 살게 됐다.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 같다”며 웃었다.
김 감독은 영화 제작보고회나 인터뷰 자리에서 작품에 대한 탕웨이의 집중력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다. ‘원더랜드’에서 바이리가 고고학자를 연기하는 바람에 집에 영화 책보다 고고학 서적이 더 많이 쌓이게 됐고, 바이리의 딸 지아(여가원)가 김 감독의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탕웨이는 “아역 배우들이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가원은 그렇지 않았고, 상대방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무엇이든 흡수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바이리의 엄마 화란 역을 맡은 니나 파우는 연기 안에 살과 뼈가 있는 느낌을 주는 훌륭한 배우”라고 말했다.
실제로 엄마가 되면서 ‘배우 탕웨이’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탕웨이는 “감독이 내 안의 어떤 것들을 끄집어내고 이끌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에게 제일 중요한 건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번 영화에서 엄마 연기를 해보니 과거의 연기는 정말 엄마같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생활을 통해 지혜로워지고 포용력이 생기며 자연스러운 경험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의 ‘다음 연기’를 또 기대하게 된다”고 말했다.
‘원더랜드’는 인간과 기술을 대척점에 두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소통할 때 상대방이 인간이라서 가능하다거나, 인간이 아닌 존재라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병상에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박보검) 대신 건강하고 이상적인 모습의 AI 태주에 익숙해져 버린 정인(수지)은 일상으로 돌아온 진짜 태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화란은 죽은 바이리의 사진을 보면서는 애틋함을 느끼지만 영상통화에서 만나는 AI 바이리는 딸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받아들이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기술이란 건 좋거나 나쁘다기보다 받아들일 수 있느냐,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며 “사람이든 동물이든 기술이든 나와 의미있는 관계가 되는 순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어릴 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AI로 복원해 매일 영상통화하며 ‘나는 이 기계를 받아들였다’라고 말하는 해리(정유미)의 캐릭터가 비중은 작지만 그런 지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모국어가 다른 배우자와 사는 것은 소통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김 감독은 “같은 언어를 쓰면 말의 뉘앙스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생긴다.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안 통하면 더 상처받고 힘들다”면서 “탕웨이와는 서로 언어가 아주 잘 통하지 않아서 말할 때 태도 등에 더 집중하게 된다. 기본값이 달라 흥미로운 지점도 있는데, 안 통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통할 때 더 반갑다. 원래 사람은 안 통하기 때문에 통하는 게 재밌는 거 같다”고도 했다.
‘감독 김태용’은 늘 뭔가를 탐색하는 사람이다. 탕웨이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와서 ‘이것 좀 봐요’라고 말하는 어린아이같은 면이 있다”며 “현장에서 김 감독은 존경스러운 사람이고 우러러볼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아빠 김태용’은 관대하다. 탕웨이는 “김 감독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딸바보의 극치’”라며 “딸을 정말 아끼고 좋아해서 어떤 이야기든 다 들어주는데, 그게 엄마 입장에서 힘들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AI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연구하면서 김 감독은 기술이 바꿀 창작자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는 “기술의 발달 자체보다 윤리나 제도, 환경이 기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대인 것 같다”며 “영화를 디지털 방식으로 촬영하면서 현상소가 없어졌듯이 기술 발전이 직업군에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여전히 창작의 주체는 인간일 거라고 본다.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작은 차이, 0.1%의 영역은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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