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무전공·첨단학과로 3만명, 학교선 이과 쏠림…“정원 맞춰 대학 가나” [2025 대입 혼란]
“지난 주말 배치표 작업을 하다가 혼쭐이 났어요. 도대체 합격선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정작 모집요강을 만든 대학에 물어봐도 답을 몰라요.”
16일 대구의 한 일반고에서 수년간 진학부장을 맡아온 김모 교사에게 올해 입시 전망을 물었더니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의대, 무전공(전공자율선택제) 학과, 첨단학과 등 무더기 정원 변경으로 합격선이 뒤바뀔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올해는 정부의 인재 양성 정책으로 모집정원 변동의 폭이 큰 편이다. 순증된 인원만 2000명이 넘는다. 의대 모집정원은 지난해 발표된 2025학년도 대입시행계획 기준 1469명(정원 내) 늘었다. 반도체, AI(인공지능) 등 첨단학과 정원도 1145명 많아졌다. 무전공은 각 대학이 다른 학부, 학과의 인원을 빼오는 방법으로 인원을 조정해 지난해 계획 대비 2만8010명 많아졌다. 9월부터 시작되는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석 달 앞두고 3만624명의 모집정원이 변동됐다.
3만명 변동에 학교는 ‘멘붕’…“작년 성적 무의미”
교사들이 가장 큰 혼란 요소로 꼽는 건 무전공 확대다. 대구의 김모 진학부장은 “무전공 모집단위 한 곳 당 5~6개 학과가 묶여있는데, 이 중 어느 학과를 기준으로 합격선을 볼지 상당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의 한 고교 교사는 “통상 전년도 입학 컷을 보고서 올해 원서를 쓰는데 이게 다 무의미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로 인한 연쇄 이탈 규모도 전망이 힘든 상황이다. 입시 지도 경험이 많은 부산의 한 여고 교장은 “전교생 진학 상담을 해보면 3분의 1은 의대를 가겠다고 한다”며 “이 학생들이 실제 원서는 그보다 입학 점수가 낮은 약대나 간호대 등에 쓰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의대를 가려고 반수로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교 진학부장은 “첨단학과 원서도 상당히 많이 쓰려는 경향이 있는데, 진짜 진학하려는 것보다는 ‘일단 걸어두고 보자’는 경향이 크다”며 “첨단학과가 첫 합격생 입학 성적은 높을 수 있지만, 포기하려는 학생들이 다수 나와 ‘꼬리(최종 합격자의 성적)’가 길어질 수 있다”고 했다.
“국제중에서도 과고로”…이과 쏠림 부르는 증원
이러한 대입 정원의 변화는 당장 현장에선 이과 쏠림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2022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문·이과 구분이 사라졌지만, 각 대학은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의 반영 선택과목을 달리 하는 방식으로 과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의대, 첨단학과는 이과생들이 지원하는 대표적 학과다.
문·이과 학생이 함께 경쟁하는 무전공 입시에서도 이과생이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종로학원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입포털 ‘어디가’ 등에 공개된 주요 대학 2022~2024학년도 합격자 내신 성적(상위 70%)을 분석해보니 자연계의 합격선이 인문계보다 높았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구의 한 자율형사립고 교무부장은 “전교생 375명 중 14명을 제외한 학생은 모두 수능 수학에서 미적분을 선택하는 이과생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여고 관계자는 “3학년 12개반 중 8개 반이 이과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강남구의 고교 관계자도 “3학년 11개반 중 문과는 2반밖에 없다”며 “요새는 특별한 이유 아니면 ‘문사철(문학·사학·철학)’ 학과를 쓰는 학생은 없다”고 했다.
이과 선호 현상은 중학교까지도 확대되는 추세다. 한 수도권 국제중 3학년 담임 교사는 “국제중 조차도 이과와 문과 준비 비율이 6대4 정도이고, 작년엔 과학고등학교를 가는 학생도 5명 나왔다”며 “요새는 학생들이 이과 가려고 수학 선행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고, 그나마 문과 학생이 지망하는 학과도 한의대”라고 말했다.
“학과 선택에 적성·흥미는 뒷전”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올해 증원으로 최상위권 대입 경쟁이 거세지며 교육적 의미의 과목, 진로 선택은 의미가 퇴색됐다”며 “개인의 적성이나 흥미를 따지는 것보다는 증원 기간 5년 간 의대 입학 가시권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모든 것을 선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재진 대학미래연구소장은 “첨단학과의 경우 학생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 소재 대학 정원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수험생이 몰릴 것”이라며 “현 정부의 정원 변경이 적성과 점수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이과에 학생이 몰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했다.
최민지·이가람·서지원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찰 간부들은 계륵이야” 뇌물 풀세트 다섯 곳은 여기 | 중앙일보
- "산책 나갔다가 몸에 500마리"…'팅커벨' 사라지자 '이 벌레' 습격 | 중앙일보
- 말기암 완치, 또 말기암 걸렸다…'두 개의 암' 생존자 이야기 | 중앙일보
- 박진영 "시혁이 써먹겠다"…방시혁, 기타 치면서 깜짝 등장 | 중앙일보
- 박세리 대전 집 경매 나왔다…직접 설계했다는 '나혼산' 그 건물 | 중앙일보
- [단독] '세한도' 기부 때도, 하늘 갈 때도 "알리지 말라"…기부왕 손창근 별세 | 중앙일보
- 아이유 사는 130억 고급빌라…10명 중 8명이 현금 내고 샀다 | 중앙일보
- '이범수와 파경' 이윤진, 발리서 호텔리어 됐다 "새롭게 시작" | 중앙일보
- 30대 남성 보호사가 50대 여성 몸 올라타 폭행…정신병원 CCTV 충격 | 중앙일보
- 김호중, 음주 뺑소니 35일 만에 합의…택시기사 "운전 생각 없어" | 중앙일보